제27화. 97년 여름, 친구들과 떠난 격포 바다

by 홀로서기

1997년 7월. 기말고사가 끝나고 찜통더위가 찾아왔다. 방바닥에 늘러붙어 있던 동기 놈들이 내 자취방을 습격했다.


"야! 김호준! 바다 안 가냐? 우리 엠티 가야지!"

"더워 죽겠는데 무슨 엠티야. 돈도 없어."

"야, 걱정 마. 누님이 가신단다."


녀석들은 이미 나 몰래 그녀 섭외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누님이 차도 지원해 주시고, 고기도 사주신다고 했어. 넌 몸만 와. 아니, 넌 누님 모셔올 운전기사니까 운전만 해."


결국 우리는 전라북도 부안, 격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녀의 흰색 프라이드와 동기 놈의 낡은 승합차에 나눠 타고 달리는 서해안 도로는 젊음 그 자체였다. 창문을 열고 "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우리를 보며,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흐뭇하게 웃었다.


"잘 노네, 내 새끼들."


격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짐을 풀기도 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동기 놈들은 작정한 듯 나를 들어 올려 물속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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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을 뺏어간 죄다! 받아라!"


짠물을 먹고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며 그녀는 모래사장 파라솔 아래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물놀이가 끝나고 시작된 저녁 바비큐 파티. 이곳은 그녀의 독무대였다.


"자, 고기 익었다. 너희들 많이 먹어."


그녀가 집게로 고기를 건네줄 때마다 녀석들은 아기 새처럼 받아먹으며 아부를 떨었다.


"역시 누님밖에 없습니다!"

"호준이는 누님한테 진짜 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저희한테 죽습니다."


어느새 나는 뒷전이고, 그녀가 이 모임의 대장이 되어 있었다. 질투가 나기보단, 내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려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서울 깍쟁이인 줄 알았던 그녀가, 촌놈들 틈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원샷!"을 외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격포의 명소, 채석강(彩石江) 층암절벽 아래로 산책을 나갔다. 친구들은 눈치 빠르게 저만치 앞서 걸어가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달빛이 비치는 검은 바다, 그리고 층층이 쌓인 바위들의 신비로운 실루엣. 파도 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재밌다. 네 친구들 진짜 웃겨."

"시끄럽지? 정신 하나도 없고."

"아니, 좋아. 너의 세계에 내가 초대받은 느낌이라서."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나의 학교, 나의 친구, 나의 촌스러운 자취방까지. 그녀는 내 모든 초라한 현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호준아."

"어?"

"우리 내년 여름에도, 내후년 여름에도... 이렇게 같이 올 수 있을까?"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저만치서 친구들이 쏘아 올린 폭죽이 밤하늘에 터졌다. 그 불꽃 아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1997년의 여름. 격포 앞바다의 파도는 거칠었지만, 우리들의 청춘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가후기

생업과 생일이라는 이벤트가 저를 못오게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올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