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벽 밖의 지옥

by 홀로서기

치지지직—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네온사인이 번졌다.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판이 허공에 떠올라 "완벽한 시민, 완벽한 미래"를 선전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 골목길은 쓰레기와 오물 냄새로 진동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국가 지정 직업 훈련원에서 흉기를 소지한 난동범들이 탈출했습니다.]


도심의 대형 전광판. 아나운서의 긴박한 목소리와 함께 화면에 G(이호준), E, F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떴다. 훈련소 입소 때 찍혔던, 죄수처럼 번호판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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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교화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방화를 저질렀으며, 훈련원 시설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발견 즉시 신고 바랍니다. 포상금 5천만 원.]


"......미친."


골목길 그늘, 푹 눌러쓴 모자 아래로 G(호준)가 욕설을 씹어뱉었다. 그는 전광판을 노려보다가, 옆에 있는 E와 F의 어깨를 감싸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오빠... 우리 얼굴이 다 나왔어. 이제 어떡해?"


F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을 떨며 물었다. 그들은 훔친 승합차를 도시 외곽의 폐차장에 버리고, 노숙자들의 옷을 훔쳐 입은 채 도심으로 잠입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최악이었다. 원장은 그들을 단순 탈주범이 아닌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저기 봐."


G가 턱짓으로 전광판 아래를 가리켰다. 뉴스 화면이 바뀌고, 휠체어를 탄 원장과 그 옆에 서 있는 D(교수), A(사업가)의 모습이 나왔다. 그들은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D(전 대학교수): 그들은... 악마였습니다. 우리 같은 선량한 입소자들을 선동하고, 말을 안 들으면 폭력을 휘둘렀어요.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도 죽었을 겁니다.]

[A(전 사업가): 맞습니다. 저 G라는 청년이 주동자예요. 사회에 불만이 가득 차서 다 죽여버리겠다고...]


뻔뻔한 거짓말. E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저 쓰레기들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지들이 배신해놓고!"

"진정해, 누나. 소리 내면 걸려."


G가 E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 역시 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배신자들은 영웅이 되어 따뜻한 곳에 있고, 피해자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차가운 빗속을 떠돌고 있다. 이것이 '특별법'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버려진 지하철 역사, 제3구역]


세 사람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도시의 가장 밑바닥, 폐쇄된 지하철 역사로 숨어들었다. 이곳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실업자들, 일명 '그림자'들이 모여 사는 무법지대였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매캐한 연기. 곳곳에 피워놓은 드럼통 불 주변으로 퀭한 눈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구 하나 G 일행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남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조차 사치였다.


"일단 여기서 숨을 고르자."


G가 구석진 자리에 신문지를 깔았다. F는 지쳐서 바로 쓰러지듯 잠들었고, E는 덜덜 떨며 G의 곁에 앉았다.


"호준아... 우리 이제 어쩌지? 돈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갈 곳도 없어."


E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훈련원을 나오면 자유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벽 밖은 더 거대하고 잔혹한 정글이었다. G는 품 안에서 꼬깃꼬깃한 초코바 하나를 꺼내 반으로 쪼개 E에게 건넸다. 아까 폐차장에서 차를 뒤지다 발견한 유일한 식량이었다.


"먹어둬요. 버티려면."

"너는?"

"난 괜찮아."


G는 거짓말을 하며 남은 반쪽을 잠든 F의 주머니에 슬쩍 넣어두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그는 주먹을 꽉 쥐며 참아냈다.


"누나. 훈련원은 튜토리얼이었어."


G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도시의 마천루를 올려다보았다. 저 높고 화려한 곳 어딘가에 원장의 본사가 있을 것이다.


"놈들이 우리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다면, 기꺼이 되어주지."

"뭐...?"

"숨어만 다녀선 말라 죽어. 놈들이 가진 걸 뺏어야 해. 돈이든, 정보든."


G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는 훈련원에서 겪은 지옥을 통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시스템에 순응하던 무명 배우 이호준은 없었다.


"내일 날 밝는 대로 '도깨비 시장'으로 갈 거야."

"도깨비 시장? 거긴 위험하잖아. 범죄자들 소굴인데."

"그러니까 가는 거야. 거기라면 우리 같은 유령들도 받아줄 테니까. 거기서 신분 세탁하고, 무기도 구할 거야."


G는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 조각을 주워 손에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기다려라, D, A... 그리고 원장."


폐역사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복수의 칼날은 조용히 벼려지고 있었다.




제20화. 도깨비 시장의 거래 예고


"돈이 없으면 수명이라도 파세요. 여긴 그런 곳이니까."


신분 세탁과 무기를 구하기 위해 무법지대 '도깨비 시장'에 발을 들인 G, E, F. 하지만 이곳은 원장의 감시망보다 더 지독한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그들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상인들과 G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추적자.

G는 이곳의 지배자인 '할멈'과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거래를 시도하는데... 과연 그들은 무사히 새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