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도깨비 시장의 거래

by 홀로서기

“입장료는 현금, 없으면 손가락 하나.”


녹슨 철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낄낄거리며 G(호준)의 앞을 막아섰다. 도심의 화려한 빌딩 숲 아래, 버려진 하수처리장을 개조해 만든 무법지대 '도깨비 시장'.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원장의 감시망인 '시민 ID'가 없어도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곳이었다.


"오... 오빠..."


뒤에 있던 F가 사내의 흉터투성이 얼굴을 보고 겁에 질려 G의 옷자락을 잡았다. E 역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였다. G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현금은 없고, 손가락은 내가 써야 해서 안 되겠는데."

"뭐? 이 새끼가 미쳤나..."


사내가 곤봉을 들어 올리는 순간, G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퍼억-!


G가 품 안에서 꺼낸 쇠파이프(폐역사에서 주운 것)가 사내의 명치를 정확히 찔렀다.


"커헉!"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무릎을 꿇자, G는 지체 없이 사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우드득.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사내. G는 쇠파이프를 고쳐 쥐며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할멈한테 전해. '물건'이 제 발로 걸어왔다고."


주변에서 구경하던 양아치들이 웅성거리며 길을 터주었다. 훈련원에서 짐승들과 싸우며 익힌 G의 살기는, 이곳 밑바닥 인생들에게도 낯선 종류의 것이었다.


[도깨비 시장, '만물상' 컨테이너]


미로 같은 시장의 가장 깊숙한 곳. 담배 연기가 자욱한 컨테이너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불법 개조된 무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중앙, 낡은 소파에 한 노파가 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이곳의 지배자, '할멈'이었다.


4.jpeg


"호오... 네놈들이구나. 뉴스에서 떠들썩한 그 '테러리스트'들이."


할멈이 탁자 위에 놓인 홀로그램 태블릿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화면에는 현상금 5천만 원이 걸린 G, E, F의 수배 전단이 떠 있었다.


"여기 있는 놈들이라면 5천만 원에 눈이 뒤집혀서 덤벼들 텐데. 무슨 배짱으로 기어 들어왔지?"


할멈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컨테이너 구석 어둠 속에서는 무장한 경호원들의 총구가 G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E와 F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하지만 G는 태연하게 할멈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5천만 원? 원장 놈이 우리 목숨값 치고는 너무 짜게 불렀네."

"......건방지구나."

"할멈. 당신은 돈보다 '정보'를 더 좋아한다고 들었어. 원장이 숨기고 있는 진짜 돈줄,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


G의 말에 할멈의 곰방대가 잠시 멈췄다. 할멈은 이 도시의 뒷골목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최근 원장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구역을 뺏기고 있었다. 원장은 그녀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 늙은 여우가 숨기는 게 있다?"

"지하 2층.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그 데이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난 직접 보고 왔어."


사실 반은 거짓말이었다. G는 데이터를 직접 보진 못했다. 하지만 원장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것을 보면 분명 엄청난 가치가 있을 터였다. 할멈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아. 입만 산 건 아닌 것 같군.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세 가지. 추적 불가능한 신분증(고스트 ID), 무기, 그리고 안전가옥."

"하! 꿈도 크군. 그 정보를 준다고 해도 내 수지타산에는 안 맞아. 당장 너희를 신고해서 5천만 원 챙기는 게 훨씬 남는 장사지."


할멈이 손짓하자 경호원들이 철컥, 하고 총기 안전장치를 풀었다. E가 비명을 지르며 G의 팔을 잡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G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탁자 위에 무언가를 툭 던졌다.

그것은 훈련원에서 탈출할 때 A(사업가)의 주머니에서 슬쩍했던, 원장의 직인이 찍힌 보안 카드키였다. (A를 구멍으로 밀어 넣을 때 챙겼던 것이다.)


"이게 있으면 원장 놈의 '비밀 창고' 중 한 곳은 털 수 있을 거야. A라는 배신자가 가지고 있던 거니까."


할멈이 카드키를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진품이었다. 잠시 후, 할멈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어. 아주 재미있는 놈이야. 미친개라더니 진짜였군."


할멈이 손가락을 튕기자 경호원들이 총을 내렸다.


"좋다. 거래 성립이다. 하지만 공짜는 없어. 신분증과 무기는 주마. 대신..."


할멈이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G를 쏘아보았다.


"내 의뢰를 하나 처리해줘야겠다. 우리 애들이 건드리기엔 너무 위험하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까운 물건이 하나 있거든."

"그게 뭔데?"

"'제약회사 트럭' 하나를 탈취해라. 원장의 계열사로 들어가는 물건이지. 거기서 '샘플' 하나만 가져오면 돼. 나머지는 너희가 갖든 팔든 알아서 하고."


G는 잠시 고민했다. 갓 탈출한 수배자들에게 트럭 탈취라니.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좋아. 대신 선불로 줘. 무기랑 신분증부터."

"딜."


할멈이 음흉하게 웃으며 서랍에서 낡은 권총 한 자루와 탄창 두 개, 그리고 위조 신분증 칩 세 개를 던져주었다.


"환영한다, 도깨비 시장에 온 걸. 살아남는다면 꽤 쓸만한 장기말이 되겠어."


G는 권총을 집어 들어 탄창을 확인했다. 묵직한 금속의 무게감. 이제 더 이상 도망만 다니는 신세가 아니었다.


"가자, 누나. F."


G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이미 다음 사냥감을 노리고 있었다. 첫 번째 목표는 원장의 트럭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놈들의 뼈와 살을 하나씩 발라낼 것이다.


[다음 화 예고]


제21화. 빗속의 질주


"누나, 밟아! 놈들이 눈치챘어!"


폭우가 쏟아지는 88번 산업도로. 할멈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타겟 트럭을 쫓는 G 일행.

핸들을 잡은 E(디자이너) 의 숨겨진 레이서 본능과 달리는 차 안에서 트럭의 전자 잠금장치를 해제해야 하는 F(막내) 의 손놀림!

그리고 시속 150km로 질주하는 트럭으로 몸을 날리는 G(호준)!


"이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


트럭 문이 열리는 순간, 그들이 마주할 '샘플'의 끔찍한 정체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