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두두둑-
도시 외곽의 88번 산업도로. 장대비가 아스팔트를 때리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 갓길에 세워진 낡은 튜닝 세단 한 대가 엔진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할멈이 '업무용'이라며 빌려준, 겉만 멀쩡한 고물차였다.
운전석에는 E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핸들을 꽉 쥐고 있었다.
"누나, 긴장 풀어요. 이러다 핸들 뽑히겠어."
조수석에서 G(호준)가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기며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E의 눈빛은 전에 없이 매서웠다.
"조용히 해. 나 지금 초집중 상태니까."
"운전... 할 수 있겠어요? 면허는 있어요?"
"야, 나 패션 디자이너였어. 마감 때마다 동대문이랑 공장 오가면서 밤새도록 운전만 10년 넘게 했어. 서울 시내에서 칼치기? 내가 퀵서비스보다 빨랐다고.“
E가 비장하게 웃으며 기어를 넣었다. 훈련원에서는 겁쟁이였지만, 핸들을 잡은 그녀는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뒷좌석의 F는 노트북과 해킹 툴(할멈이 준 장비)을 무릎에 놓고 떨고 있었다.
"오, 오빠... 온다!"
F가 소리쳤다. 저 멀리서 거대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안개를 뚫고 다가오고 있었다. 원장의 계열사 마크가 찍힌 검은색 무장 수송 트럭이었다.
"가자, E!"
G의 외침과 동시에 E가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았다.
끼이익-! 부아앙!
타이어 타는 냄새와 함께 세단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시속 150km를 돌파하며 트럭의 뒤를 바짝 쫓았다.
"달라붙어! 더 가까이!"
트럭 뒤쪽 적재함에는 무장 경비원 두 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이 추격해오는 세단을 발견하고 총을 꺼내 들었다.
타탕! 탕!
총알이 세단의 앞 유리창을 스치고 지나갔다. F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E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림없지!"
E는 핸들을 급격하게 꺾어 지그재그로 주행하며 총알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트럭과의 거리는 1m도 벌어지지 않게 유지했다. 신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었다.
"지금이야, F! 해킹해!"
G가 소리쳤다. 할멈의 정보에 따르면, 트럭의 적재함 문은 전자식 잠금장치로 되어 있었다. F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필사적으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자... 잠깐만! 암호가 너무 복잡해... 30초만 줘!"
"30초면 우리 벌집 돼! 10초 안에 끝내!"
G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반격 사격을 가했다. 탕! 탕! 트럭 위 경비원 한 명이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이 기관단총을 꺼내 들었다. 화력에서 밀리고 있었다.
"뚫렸다! 오빠, 지금이야!"
F의 외침과 동시에 트럭의 뒷문 잠금장치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철컥-
문이 살짝 열리자, E가 소리쳤다.
"호준아! 꽉 잡아!"
E는 트럭의 사각지대인 오른쪽 측면으로 차를 들이밀더니, 트럭의 옆구리를 들이받을 듯이 바짝 붙였다. G는 그 찰나의 순간,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빗속으로 몸을 날렸다.
쿠당탕!
G가 트럭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원이 기관단총을 겨눴다.
"죽어라!"
하지만 G는 바닥을 구르며 경비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훈련원 지하에서 사냥개들과 싸우며 익힌 실전 격투술이었다. 중심을 잃은 경비원의 턱을 권총 손잡이로 올려쳤다. 경비원이 기절하며 트럭 밖으로 튕겨 나갔다.
"후우... 후우..."
G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트럭 내부를 확인했다. 적재함 안은 냉동고처럼 차가웠다. 하얀 김이 서린 그곳에는 할멈이 말한 '샘플'로 보이는 은색 금속 케이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때였다. 운전석의 무전기에서 E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준아! 앞쪽에서 경찰차들이 오고 있어! 포위망이야!]
"젠장... 할멈이 경찰까진 손 안 썼나 보네."
G는 트럭 운전석과 연결된 작은 쪽문을 발로 찼다. 운전사가 놀라서 돌아보는 순간, G가 총구를 겨눴다.
"세워. 아니면 니 머리에 구멍 나."
운전사는 기겁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거대한 트럭이 비명과 함께 갓길에 멈춰 섰다.
뒤따라오던 세단이 트럭 옆에 급정거했다. E와 F가 뛰쳐나왔다. G는 트럭에서 은색 케이스를 들고 내렸다. 무게가 상당했다.
"성공했어... 우리가 해냈어!"
F가 환호성을 질렀다. E도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거칠게 웃었다. 하지만 G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은색 케이스의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생체 인식 락이 걸려 있었지만, 충격 때문인지 잠금장치가 살짝 벌어져 있었다.
"이게 대체 뭐길래..."
G는 호기심에 케이스 틈새를 살짝 벌려 보았다. 그리고 그 안을 본 순간, G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오빠? 그게 뭔데 그래?"
F가 다가오려 하자, G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보지 마! 뒤로 물러나!"
"어?"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마약이나 보석 따위가 아니었다. 차가운 보존액 속에 담겨 있는 것. 그것은 사람의 절단된 머리, 정확히는 훈련원에서 실종되었던 어느 훈련생의 머리였다. 그리고 그 머리에는, 기괴한 기계 장치들이 뇌와 연결되어 끔찍하게 박혀 있었다.
'생체 데이터 수집... 뇌파 실험...'
원장이 말했던 '데이터'의 정체가 이것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산 채로 부품처럼 뜯어내어 생체 CPU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미친 새끼들..."
G는 케이스를 닫으며 이를 갈았다. 단순한 훈련원이 아니었다. 이곳은 인간을 재료로 한 생체 병기 실험장이었다.
위잉- 위잉-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G는 케이스를 든 손에 핏줄이 서도록 힘을 주었다.
"타. 할멈한테 가서 따져야겠어. 이딴 걸 팔아먹으려고 했는지."
빗속에서 G의 눈빛이 늑대처럼 번뜩였다. 이제 단순한 생존 싸움이 아니었다. 이건 인간으로서의 전쟁이었다.
제22화. 괴물의 몸값
"이딴 걸 팔아먹으려고 했어?! 이건 사람이잖아!"
G는 '샘플'이 담긴 케이스를 할멈의 탁자에 내리꽂는다. 하지만 할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기괴한 미소를 짓는다.
"놀랐냐? 그게 네놈들 목숨값보다 비싼 물건이다."
할멈은 원장의 진짜 목적이 단순한 노동 착취가 아닌, '인간 병기 프로젝트'임을 폭로하며 G에게 위험한 제안을 건네는데...
한편, 샘플을 도난당한 원장은 격분하고, 도깨비 시장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최악의 청소부 '스위퍼'를 투입한다!
"오늘 밤, 목격자는 없다. 전원 사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