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은색 금속 케이스가 낡은 나무 탁자 위를 강타했다. 충격으로 케이스 뚜껑이 열리며, 푸르스름한 보존액 속에 담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선과 칩이 복잡하게 얽힌, 눈을 부릅뜬 훈련생의 머리.
도깨비 시장의 컨테이너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G(호준)는 비에 흠뻑 젖은 채, 핏발 선 눈으로 맞은편의 노파를 노려보았다.
"설명해. 이게 대체 뭔지."
G의 목소리가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낮게 깔렸다. 뒤에 서 있던 E(디자이너)는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고, F(막내)는 공포에 질려 G의 등 뒤에 숨었다.
하지만 이 구역의 지배자, 할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곰방대를 입에 문 채, 탁자 위의 '샘플'을 흥미롭다는 듯 관찰했다.
"호오... 상태가 아주 좋구나. '바이오 CPU' 초기 모델인가?"
"바이오... 뭐?"
"몰랐냐? 원장 그 늙은이가 요즘 군침 흘리는 사업이지. 반도체는 한계가 왔고, AI는 전기를 너무 많이 처먹거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인간의 뇌야. 연산 능력 좋지, 자가 발전하지, 무엇보다..."
할멈이 곰방대 연기를 훅 내뿜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재료비가 공짜잖아. 너희 같은 '잉여 인간'들을 쓰면 되니까."
"이... 미친 할망구가!"
참다못한 E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려 했지만, 어둠 속에서 경호원들의 총구가 불을 뿜을 듯 겨눠졌다. G가 팔을 뻗어 E를 막아섰다.
"그래서... 이걸 나보고 훔쳐오라고 한 거야? 팔아먹으려고?"
"돈이 되니까."
할멈은 태연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 샘플 하나면 해외 암시장에서 20억은 받아. 너희 현상금이 5천만 원이었나? 이게 너희 셋 목숨값보다 40배는 더 비싼 몸이시다."
G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사람을 부품으로 보는 세상. 훈련원 안이나 밖이나, 지옥인 건 매한가지였다. G는 당장이라도 저 역겨운 케이스를 박살 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했다.
"거래 조건, 바꿀게."
G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할멈을 보았다.
"신분증이랑 무기, 그리고 안전가옥. 거기에 하나 더 얹어."
"뭐?"
"이 샘플, 당신이 팔지 마. 내가 처리해."
"허? 20억짜리를 그냥 달라고? 네놈 배짱이 두둑한 건 알았다만, 미친 건 아니겠지?"
할멈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그때, G가 품 안에서 'A의 보안 카드키'를 꺼내 흔들었다.
"이건 샘플일 뿐이야. 원장의 '공장'에는 이런 게 수백 개는 더 있겠지. 이 카드키로 그 공장 위치를 털어서 당신한테 넘길게. 그게 20억보단 더 클 텐데?"
할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샘플 하나를 파는 건 일회성 수익이지만, 원장의 생산 라인을 장악하거나 약점을 쥐면 그 가치는 천문학적이었다. G는 할멈의 탐욕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잠시 후, 할멈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어. 아주 앙큼한 놈이야. 좋아, 딜(Deal)."
할멈이 손짓하자 경호원이 다가와 탁자 위에 검은 가방 두 개를 내려놓았다.
"약속한 ID 칩이랑 총기류다. 안전가옥은 시장 지하 3구역을 내주지. 대신..."
할멈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G에게 경고했다.
"그 샘플, 가지고 있으면 원장이 눈에 불을 켜고 덤빌 거다. 감당할 수 있겠어?"
"상관없어. 어차피 전쟁은 시작됐으니까."
G는 케이스를 닫아 챙겨 들었다.
[원장의 집무실]
쨍그랑-!
고급 위스키 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원장은 휠체어에 앉은 채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탈취당해? 내 '프로토타입'을?"
그 앞에는 A(사업가)가 고개를 조아리고 서 있었다. A는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죄... 죄송합니다, 원장님! 경찰을 풀어서라도 당장 찾겠습니다!"
"멍청한 놈! 경찰이 그게 뭔지 알게 되면 우린 다 끝장이야! 그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라고!"
원장은 핏대 선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옆에 있던 D(교수)가 차분하게 끼어들었다.
"원장님, 진정하세요. 놈들이 도깨비 시장 쪽으로 들어갔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아마 그쪽 루트를 통해 물건을 처분하려 하겠죠."
"도깨비 시장... 그 늙은 여우(할멈) 소굴이군."
원장은 분노를 삼키며 인터폰을 눌렀다.
"김 실장. 연결해."
"누굴 말씀이십니까?"
"'청소부(Sweeper)'. 그놈을 불러. 값을 두 배로 준다고 해."
A와 D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청소부'. 그는 원장이 키우는 사냥개 중에서도 가장 흉포하고 뒤탈 없는 놈이었다. 한번 타겟을 물면, 그 구역의 쥐새끼 한 마리까지 모조리 죽여 없앤다는 살인귀.
"놈들이 숨은 도깨비 시장을..."
원장의 눈이 뱀처럼 번뜩였다.
"지도에서 지워버려. 샘플만 회수하면 목격자는 필요 없다."
[도깨비 시장 입구]
비 내리는 새벽. 시장 입구를 지키던 덩치 큰 문지기들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빗속을 뚫고 검은 우비를 입은 사내 한 명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영업 끝났는데. 꺼져."
문지기가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우비 모자 아래로 드러난 하관에는 기괴한 금속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푸욱-
순식간이었다. 사내의 손에서 뻗어 나온 칼날이 문지기의 목을 꿰뚫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문지기가 쓰러졌다.
사내, '청소부'는 피 묻은 칼날을 빗물에 씻어내며 무전을 쳤다.
"입구 정리 완료. 진입한다."
도깨비 시장의 밤. 진짜 살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23화. 피로 맺은 동맹
"도망치면 평생 쥐새끼야. 하지만 이기면... 우리가 주인이 된다."
원장이 보낸 최악의 살인귀 '청소부'가 도깨비 시장을 덮쳤다. 비명과 선혈이 낭자한 아수라장 속, E와 F는 도망치자고 애원하지만 G의 눈빛은 다르게 번뜩인다.
"저놈을 잡으면, 할멈은 내 편이 된다."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건 G의 미친 도박! 압도적인 무력의 청소부를 상대로, G는 '개싸움'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빗속의 폐허에서 피어나는 핏빛 동맹. 과연 G는 이 지옥을 자신의 '요새'로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