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피로 맺은 동맹

by 홀로서기

치익- 파밧.


빗물에 젖은 네온사인이 합선되어 요란하게 깜빡거렸다.

도깨비 시장 입구에서 시작된 비명소리는 순식간에 시장 안쪽까지 번졌다.


"으아아악!"

"뭐, 뭐야! 저 새끼 잡아!"


시장 골목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상인들은 물건을 챙겨 도망치느라 바빴고, 할멈의 조직원들이 칼과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청소부(Sweeper)'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서걱. 퍽.


검은 우비를 입은 청소부는 빗속에서 춤을 추듯 조직원들 사이를 누볐다. 그의 양손에 들린 단검이 번뜩일 때마다 피보라가 튀었다. 총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지하 3구역, 안전가옥]


"오빠! 빨리 짐 챙겨! 놈들이 코앞까지 왔어!"


F(막내)가 해킹하던 노트북을 덮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E(디자이너)도 새로 받은 위조 신분증을 챙겨 넣으며 G(호준)의 팔을 잡아끌었다.


"호준아, 지금이 기회야. 저놈들이 싸우는 틈에 하수구로 빠져나가자. 할멈이고 뭐고 우리 목숨이 먼저잖아!"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지금 도망치면 살 수 있다.

하지만 G는 문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탄창을 확인하는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청소부... 원장이 보낸 사냥개.'


G의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도망치면? 우리는 평생 쫓기는 신세다. 고작 위조 신분증 하나로는 원장의 추적망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시장을 지켜낸다면?


"아니. 우린 남는다."


G가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기며 말했다.


"뭐? 너 미쳤어? 저 바깥 꼴을 봐! 살인귀가 날뛰고 있다고!"

"그러니까 돕는 거야."


G는 E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도망치면 우린 평생 쥐새끼야. 하지만 할멈을 구하면, 이 시장 전체가 우리 '아지트'가 돼. 5천만 원짜리 수배범이 아니라, 이 바닥의 '파트너'가 되는 거라고."

"하... 진짜...“


E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G의 '도박'은 미친 짓 같지만, 성공하면 판을 뒤집는다는 것을.


"F, 넌 여기서 CCTV로 놈의 위치 계속 브리핑해. E 누나, 차 시동 걸고 대기해. 만약 실패하면 나 버리고 바로 튀어."

"......안 죽는다고 약속해."


G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복도로 뛰쳐나갔다.


[시장 중앙, 할멈의 컨테이너]


"막아! 저 괴물 새끼 막으라고!"


할멈의 최측근 경호대장인 '독사'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이미 바닥에 즐비했다.

청소부는 우비에 묻은 피를 털어내지도 않은 채,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독사의 복부를 걷어찼다.


쿠당탕!


독사가 나가떨어지자, 청소부는 망설임 없이 할멈이 있는 컨테이너 문을 뜯어내듯 열어젖혔다.

안에는 할멈이 곰방대를 든 채 떨고 있었다. 천하의 할멈도 눈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는 그저 힘없는 노인일 뿐이었다.


"타겟 확인. 제거한다."


청소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단검을 치켜들었다.

할멈이 체념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타탕-!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청소부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청소부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컨테이너 지붕 위에 서 있는 G가 보였다.


"야, 쓰레기 차 왔다."


G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겨눈 채 비릿하게 웃었다.

청소부의 시선이 G에게 꽂혔다. 감정 없는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방해물..."


청소부가 할멈을 내버려 두고 G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든 속도였다.

단검이 G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챙-!


G는 쇠파이프(아까 주운 것)로 단검을 막아냈다. 손목이 부러질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G는 물러서지 않았다. 훈련원에서 짐승들과 뒹굴며 익힌 '개싸움'은 정석적인 암살 기술과는 달랐다.

"으아아악!"


G는 쇠파이프를 내던지고, 청소부의 허리춤을 붙잡아 진흙탕 바닥으로 함께 굴렀다. 빗물과 오물이 튀는 난타전.

청소부가 단검으로 G의 옆구리를 그으려 하자, G는 이로 청소부의 손목을 물어뜯었다.


"크윽!"


청소부가 처음으로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 그 틈을 타 G는 주머니에서 섬광탄(시장 상인에게 훔친 것)을 꺼내 안전핀을 이로 뽑았다.


"같이 눈 좀 멀어보자!"


번쩍-!


강렬한 빛이 터지며 시야가 하얗게 멀어버렸다. 청소부가 괴로워하며 눈을 가리는 사이, G는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더듬어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청소부가 뒤로 털썩 쓰러졌다. 가슴과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그는 바닥을 기며 탈출구를 찾았다. 임무 실패를 직감한 것이다.


"멈춰."


G가 확인 사살을 하려던 순간, 등 뒤에서 할멈의 목소리가 들렸다.

독사와 남은 부하들이 절뚝거리며 달려와 청소부를 포위했다. 할멈은 곰방대를 탁탁 털며 걸어 나왔다.


"저놈은 죽이지 마라. 원장 놈한테 보낼 '선물'로 딱 좋겠어."


할멈의 눈빛은 다시 예전의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쓰러진 청소부에게 침을 뱉고는, 피투성이가 된 G를 바라보았다.

G는 숨을 헐떡이며 피 묻은 얼굴을 닦아냈다.


"이걸로... 빚 갚은 거야, 할멈."


할멈은 잠시 말없이 G를 응시하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아니. 이건 빚 갚음이 아니다."


할멈이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이건 '투자'야. 오늘부터 내 구역은 네 구역이다, 파트너."


G는 피 묻은 손으로 할멈의 쭈글쭈글한 손을 맞잡았다.

비가 쏟아지는 도깨비 시장의 폐허 속에서,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피의 동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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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제24화. 사냥개의 목줄


"죽이지 마. 이 개가 주인을 물게 만들어야지."


도깨비 시장의 지하 고문실. 할멈은 포획한 '청소부'를 당장 죽여버리려 하지만, G는 그를 말린다. G의 머릿속에는 이미 원장을 속일 치밀한 시나리오가 그려져 있었다.


"놈에게 연락해. '임무 완료'라고."


청소부의 통신기를 이용해 원장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는 G.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원장이 방심한 틈을 타, G와 할멈은 원장의 비자금 창고를 털기 위한 연합 작전을 개시하는데...

거짓된 신호탄과 함께 시작된 역습! 사냥감이었던 그들이 이제 사냥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