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는 상자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한 번쯤은 잃어버린 기회와 가치를 생각하며

by 꽃에서 꽃이 핀다

구멍이 세 개 뚫린 네모 상자가 있다. 무엇이 들어있을까?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은 사람이라면 단번에 '양'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도 어린왕자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양을. 상자를 열어보지 않아야 더 발전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상상력'이다. 그러나 상자를 열어야만 발전하는 것도 있다. 리서치가 그렇다.


AI의 리서치 기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 중이다. 며칠 전에는 테스트로, 구글 #Gemini 를 활용하여 PDF 문서를 요약, 추가적인 자료를 인터넷에서 수집하여 청소년에게 '광고기획 업무'를 소개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이트에는 광고기획 업무에 대한 8가지 측면의 친절한 소개에 데이비드 오길비의 명언이 적당히 버무려졌다. 메뉴를 클릭하면 해당 메뉴로 건너뛰는 등이 인터페이스도 포함되어 있다.


무료 웹호스팅 페이지에 가입하여 HTML을 업로드하는 것 외에, 나는 AI가 하는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물론 코드도 한 줄도 쓰지 않았다. AI는 처음 입력한 프롬프트 몇 줄에 충실한 수준을 넘어 인터넷에 있는 다양한 정보를 끌고 왔다. 그렇게 잠시 뒤에 페이지가 완성되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디자인에 대한 가이드를 줬으면 달라졌겠지 싶다. 경악할 만큼 빠르고 인정하기 싫을 만큼 효율적이었다.


AI는 또한 이 웹페이지를 만드는 데 참고한 자료들의 출처도 알려줬다. AI의 거짓말(#할루시네이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출처의 신뢰도나 참고 자료에서 왜곡하거나 누락한 부분은 없는지 검토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만든 테스트페이지라 검토하지는 않았는데, 실무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처를 보니 막막했다. AI가 반시간 동안 검토한 텍스트의 양을 나는 같은 시간에 읽어낼 수 없으니까.


AI 에빈겔리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AI 활용의 강점으로 꼽는다. "AI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 많은 논문을 모두 읽고 정리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맞는 얘기다. 하지만 AI의 요약이나 분석에 오류가 있었다면? 논문 내용 중 더 요긴한 것을 놓쳤을 가능성은? 그런 일이 있다면 리서치 결과 보고서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작은 균열이 댐을 무너뜨리듯.


혹은 중요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나의 아이디어를 불타오르게 만들 작은 문장이 숨어 있었다면? AI와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게 그려준 상자 사이 차이가 있다면, AI가 그리는 상자는 인간의 상상력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효율화가 만들어내는 가능성과 비효율이 선물처럼 무작위로 내어주는 가능성 사이 무엇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무언가 놓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무언가를.'


AI와 길을 걷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 AI의 설명으로 풍경을 떠올린다. AI가 지평선까지 펼쳐진 찬란한 장미밭을 손에 잡히듯 묘사한다. 나는 장미 향기를 맡으며 'AI가 말한 대로'의 풍경 쇽에 내가 있음을 '믿는다'. 장미들보다 키 작은 제비꽃이 나에게 차마 향기를 전하지 못하고 내 발에 밟히기 직전이라는 것도 모른 채.


무슨 상관이겠는가. 당장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든 AI가 인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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