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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와 라보가 취향입니다만

좋아하는 브랜드를 찾아내는 일의 구매 외적 의의

by 꽃에서 꽃이 핀다

사람의 욕망을 비즈니스라는 도구로 조각하면 브랜드가 된다. 브랜드를 보고 욕망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는 잠재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일 뿐이다. 어떤 브랜드도 사람들 마음속에 없던 니즈를 생기게 하지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가치 실현 브란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어울리는 브랜드를 찾는 과정은 그래서 나의 욕망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없다면, 욕망이 없다는 뜻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직 내 욕망에 맞는 브랜드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직 그런 브랜드가 출현하지 않았을 수 있다. 혹은, 아마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해서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보고도 부정하는 '브랜드 입덕 부정기'에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검소한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이 어느 날 샤넬에서 너무나 마음 끌리는 가방을 발견했다면, 자신의 욕망을 쉽게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욕망이 신념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신념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담 등 여러 심리적 요인이 자신의 욕망에 대한 스스럼없는 고백을 방해한다. 그리고 애써 이렇게 말한다. "그 브랜드 나쁘진 않은데,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야."


브랜드를 탐색하고 좋아하는 과정이 반드시 구매로 연결되지 않아도 좋다. 브랜드는 사람의 필요, 사람의 호감을 투영한다. 대중적 브랜드는 대중적 필요와 호감을, 니치 마켓의 브랜드는 니치한 소비자의 필요와 호감을 반영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발견하는 일은 대중적 취향과 나의 취향, 그 사이의 간격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종의 취향에 대한 MBTI인 셈이다. 그래서 꼭 그 브랜드를 구매하여 갖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브랜드 하나쯤 마음에 품는 일은 의미가 있다.


나는 자동차 브랜드 '벤틀리'를 좋아한다. 곡선이면서 단단하고, 둥글면서 단호한 느낌이 좋다. 그런데 나는 운전을 즐기지 않고, 그래서 자동차를 소유하는 데서 별다른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자금이 있다고 가정할 때 벤틀리를 소유하는데 우선 지출하지는 않을 듯싶다. 그냥 길에서 그 차를 보면 기분이 좋다. 꼭 비용의 문제는 아닌 게,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자동차 브랜드는 '라보'다. 라보는 한국지엠에서 생산하다가 단종된 소형 트럭이다. 보통 트럭과 비슷한 크기의 탑승 공간에 비해 짐을 싣는 탑재 공간이 너무나도 작은 그 비대칭성이 좋다. 아이들 만화 '로보카 폴리'에 나오는 자동차 캐릭터를 보는 기분이다. 벤틀리와 마찬가지로 길에서 라보를 보면 즐겁다. 그러나 라보 역시, 그 디자인에 대한 내 취향을 발견했을 뿐이다.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작품성이 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감상하면 된다. 소유보다 중요한 일은 나를 아는 것이니까.


(물론 필요하면 구매해도 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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