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영화를 보며 '애플'을 생각한다
쥬라기 시리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1편, 1993년작 쥬라기공원이다. 전세계 관객들에게 경악을 넘어 경이를 선사했던 첫 작품은 당연하게도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와 음향으로 3관왕을 수상하였다. 촬영기술이나 특수효과 뿐 아니라 뛰어난 연출력도 큰 역할을 했다. 컵에 따른 물이나 고여있던 물웅덩이에 번지는 물결은 어떤 시각적인 효과보다 멀리서 다가오는 압도적인 공포를 몸서리쳐지게 전달했다.
그리고 공룡 브랜드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영화 속에서 이미 '쥬라기 공원'이라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시스템과 굿즈가 등장했기에, '쥬라기'라는 브랜드는 빠르게 시장을 확장할 수 있었다. 티라노의 실루엣에 겹쳐 쥬라기공원의 현수막이 떨어지는 장면은 영화 속 명장면이자 그대로 브랜드의 로고, 간판, 패키지가 되었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2025)'은 전전전전전전작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물려 받은 후속작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는 바, 전작들에 등장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을 이어가지 않고 세계관만을 공유한다는 전략이던 듯하다.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공룡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건을 해결한다는 '새로움' 브랜딩을 쥬라기 브랜드에 더해졌을 때 어떠한 시너지 효과가 나기를 기대했을까?
'기대 효과'를 따져보려면 먼저 타겟이 누구였는가를 짚어봐야 한다. 30년 된 브랜드가 새로움을 시도할 때, 이렇게 말하는 브랜드 담당자들이 있다. "우리 브랜드의 오랜 팬들은 브랜드를 더 좋아하게 되고, 새로운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선망하게 되는 그런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이건 그냥 '성공하고 싶어요' 내지는 '돈 많이 벌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다. 전략 목표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브랜드의 오랜 팬들은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브랜드 신상(여기서는 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어떠한가?', '우리 브랜드를 우선 또는 무조건 구매할 의향은 여전한가?', '그런 의향을 가진 팬들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과거 대비 그 비율은 달라지고 있는가?' 등에 대한 확인이 있고 나서야, 이번 신상 출시에 기대해야 하는 전략 목표가 수립되고, 신상의 스펙과 캠페인 전략이 따라올 수 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말하면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쥬라기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말이다. 브랜드가 새 영화에 담으려 했던 '새로움'은, 전작을 크게 뛰어 넘는 '혁신성'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저 '전작과 다름'에 그쳤다. 올드 팬 입장에서는 시리즈가 거듭 될수록 공포심은 희미해지고 있다 느끼던 차에, 그렇지 않아도 '느슨해진 공룡 씬'에 '어린이용 착한 맛 서사'라는 무난한 조미료를 탈털 털어 넣은 인스턴트 간식이 되어 버렸다. 그렇고 그런 신상을 맛본 이전 소비자는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먹던 맛이랑 비슷한데 맛이 좀 변한 것 같네. 좀 싱거워진 거 같기도 하고. 예전엔 맛이 더 찐~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같은 경험이 몇 번 반복되면, 더 이상 이 브랜드의 새 제품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오랜 제품에 대한 애착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조사하면 여전히 로열티 높은 고객처럼 착시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이미 구매 의향은 '제품을 보고 판단함'으로 바뀌어서 '일반 소비자'에 가까워졌다.
이런 관점에서 쥬라기 브랜드의 이번 신상 전략은 다소 실패한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올드 팬'이 메인 타겟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어지간히 늘 성공적인 캠페인만 해 오지 않고서야, 30년 된 브랜드는 흔히 '기존 팬은 줄어들고 새 타겟은 크게 늘지 않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신규 타겟을 유입할 새로운 상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신상품을 출시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시장 내 어떤 소비자를 새로운 팬덤으로 끌어들일 것인가'의 전략이 필요하다. 기존 브랜드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서 가장 적은 리소스 투입으로 확실히 유입시킬 수 있는 소비자는 누구일까? 다소 싱거운 맛으로 출시된 이번 영화를 볼 때, 쥬라기 브랜드 마케터가 노린 타겟은 '초등학생'이었을 수 있겠다. 그것도 '30년 전 쥬라기공원에 빠져버린 40~50대의 자녀들. 추억의 시리즈를 자녀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쥬라기 브랜드 경험을 시작할 아이들 말이다. 만약 쥬라기 신작의 타겟이 정말 추측대로였다면, 나름 성공적이다. 공룡+모험+우정+영웅의 조합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맛집이 될 테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인구는 세대가 어려질수록 줄고 있다. 지금의 초등학생 세대는 볼 콘텐츠가 너무 많다. 즉, 어린이만을 신규 유입 타겟으로 설정해서는 장기적으로는 비전이 밝지만은 않다. 결국 신규 성인 타겟도 유입시킬 장치가 필요하다. 약간의 매운맛과 인생의 쓴 맛, 로맨스의 달콤한 맛과 다소 복잡한 서사까지. 어른용 특제 소스를 적절히 뿌리면서, 부모와 동행한 아이들도 볼만한 '약간 매운맛'으로 잘 조리해 냈다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맵달한 로제떡볶이 정도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사실 오늘의 주제는 '애플'이다. 변하지 않는 고전적 명품과 달리, 혁신으로 끝없이 변해온 것이 애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최근 연달아 전해지는 애플의 기술 혁신 부진설은 애플 팬이 아닌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든다. 신상이 발표될 때마다 '놀라움'의 맛은 떨어지고 어딘지 싱겁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몇 년은 광고 마케팅조차 혹평을 받기도 해서(사과문을 내고 광고를 내린 사건이 있었음) 올드 팬들의 자부심을 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규 팬 유입 전략도 필요할 텐데 겉으로 보기에는 또렷하게 전략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살아있지 못하고 화석이 되어가는 공룡을 보는 듯하다.
잘해주던 브랜드이니 계속 잘해주면 좋겠고,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 팬이라면 누구나 내가 사랑하는 브랜드가 성큼성큼, 땅을 울리며 당당하게 걸어와주길 바랄 테니.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