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방범을 탐색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
현대차에서 ‘나무 특파원’이라는 공공 캠페인으로 칸 라이언즈 국제 광고제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10년 전부터 펼쳐온 숲 조성 프로젝트 ‘아이오닉 포레스트’의 성과를 홍보하는 한편, 기후 변화의 위협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다.
캠페인은 나무와 AI라는 다소 이질적인 요소들을 한데 묶었다. 나무에 생태 트래킹 장치를 설치하고 여기서 수집된 나무와 주변 환경 데이터를 AI에 입력, 나무가 1인칭인 기후 기사를 작성하여 실제 언론에 실었다. 광고업에서는 전통적으로 3B가 통한다는 말이 있다. 3B란 Baby(아기), Beauty(미녀), Beast(동물)의 약자로, 주목과 호감을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인 매개다. 오래된 공식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광고가 3B를 활용하여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현대차의 ‘나무 특파원 캠페인’은 전통적인 모델이 아닌 ‘나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거북이나 멸종 위기의 동물이 활용되어 온 그간의 공공 캠페인들과는 다른 시도다.
게다가 AI를 활용하여 나무에게 말을 하게 한 점이 탁월하다. 광고 속에서 의인화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동물이나 사물을 등장시켜 눈코입을 붙이거나 성우가 가상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식이었다. 그 말의 내용은 당연히 카피라이터의 작업 결과물로, 인간의 상상력을 다른 대상에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차의 이번 캠페인은 나무가 실제 나무 자신이 처한 환경적 상황을 기술하게 함으로써, 가짜 1인칭이 아닌 진짜 1인칭에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어떤 광고 속 시도와도 차별화된다. ‘창작 활동이 가능한 대형언어모델(LLM)은 인간의 창의성을 끌어내리지 않을까’라는, 지금 시대의 어두운 화두에 대한 빛나는 응답이기도 하다.
나무가, 인간과 AI와 함께 작성한 이 기사들은, 그 시도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한 줄 한 줄 완성도가 높고 마음에 주는 울림이 깊다. 기사의 일부를 인용한다. 이 인용이 문제가 된다면 삭제할 것이다.
“나의 뿌리는 이곳 홍천에 자리하고 있지만 남동쪽의 언덕에서 지평선 너머로부터 밀려오는 뜨거운 기운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올해 3월 21일부터 5월 15일까지 무려 스무 차례나 발생한 산불로 10만 헥타르가 넘는 숲이, 수없이 많은 나무들의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사라졌다. 그곳은 단순히 나무들이 자라는 땅이 아니었다. 함께 뿌리내리고,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아가던 친구들의 집이자 공동체였다. 산불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산불은 바닷가를 향해 번지며 전국을 휩쓸었다.
물론, 사람들은 탈출할 수 있었다.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산불의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우리 친구들이 살던 골짜기는 이제 한 줌의 재로만 남았다.”
(출처 : “타 들어가는 회복력: 산불에 흔들리는 숲의 최전선에서”, 대한민국 홍천 백합나무 특파원)
누구나 이런 캠페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도 뛰어나지만, 이런 캠페인에는 초월적 예산과 초월적 협력과 초월적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것도 돈을 내고 계획을 승인하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그런 환경은 노력해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최소한의 시간 안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진다.
경력이 쌓이면서 캠페인 과제 앞에서 늘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는지’, ‘클라이언트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않을지’,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 나를 반성한다. 나를 광고로 끌어들인 것은 이런 의미 깊은 캠페인들이었으며, 내가 크리에이티브에 욕심을 내게 만든 것은 이런 창의적인 시도들이었다. 지금도 돈과 시간과 수많은 조건의 한계로 최선의 결과를 미리 포기하는 수많은 동료들을 생각한다. 나와 함께 일하지 않았더라도, 멋진 캠페인 앞에서 부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낄 업계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멋진 캠페인에 가슴이 뛴다면 당신을 응원한다. 뛰어난 캠페인에 나처럼 설렘과 자격지심을 동시에 느낀다면, 그래도 나는 당신을 응원한다. 누군가가 해내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니까. 중요한 것은, 최선을 향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AI를 충분히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아이디어를 충분히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있는가? 우리는 최대한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