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누구'를 구분하는 기준을 다시 써야 할 시대
요새 이상한 집착이 생겼다. 길을 걷다가 불현듯 눈에 들어온 풍경에 대해 따져본다.
"이 장면은 AI가 재현할 수 있을까?"
재현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재현하지 못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영혼이 깃들지 않은 무엇이 감히 영혼이 담긴 피사체를 베껴 그리지 않기를. 이런 마음, 괜한 오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논의를 해야 한다면 아마 '영혼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토론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 외의 생물 또는 유기체가 아닌 사물에도 영혼이 깃드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저 가로수와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도심의 컨베이어 벨트가 된 아스팔트 도로에도 영혼이 있을까? 공장을 갓 벗어나 오늘 처음으로 아스팔트 위에 바퀴를 굴려 본 금속 자동차라면?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문화나 종교에 따라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인류 공통의 단일한 답안은 아직까지 없다. 영혼의 문제를 두고 AI와 인간을 비교하는 일은 이런 철학적 종교적 문화적 질문들이 누적된 숲과 협곡을 지나 마침내 진실의 호수에 도착해서야 답변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이 문제를 곱씹어보고 토론할 여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AI는 이미 우리 생활에 바짝 들어와서 인간 고유의 일이라고 여겼던 다양한 일들에 참여하고 있다.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린다. 추상적인 요청에도 나름의 창의성으로 요청의 빈틈을 메꾼다. 인간과 대화하고, 심지어 일부 사람들에게는 친구나 상담사가 되어준다.
작년만 해도 'AI는 복잡하고 기계적인 일들을 효율화할 뿐이며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막연한 선긋기를 하는 동안 AI는 빠르게 창의적 일에서도 인간의 자리를 파고 들어왔다. 이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우리가 새로운 선을 그으려 할 때 AI는 이미 그 선 안으로 들어와 있는 식이다. 광고 분야에서는 AI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AI가 만든 영상을 AI가 송출한다.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혼자 하는 일은 아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AI 없이 혼자 해내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
이제 질문이 달라질 것이다. 'AI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서, '인간은 AI와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로. '어떤 일을 굳이 인간이 해야 할까?'로. AI는 점점 자기 필요를 증명할 필요가 줄어들고, 인간은 점점 자신의 필요를 설명해야 하게 되고 있다. 이런 변화 속, AI를 '영혼 없는 기계'로 폄하하는 방법은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되기 어렵다. 보다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존적으로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해야 해야 할 때다.
그래서 요즘 나는 AI가 떠올리거나 재현하지 못할 풍경들에 대해 생각한다. AI가 감쪽같이 따라 할 수 없는 장면들을. 내가 그런 장면들을 포착하여 온라인에 공유하면 AI는 이 정보마저 학습하고 더 인간과 같아지리라는 위협을 느끼면서.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