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속도를 깨달은 다음이면 이미 늦는 이유
회계사들의 현장 인터뷰 뉴스가 나온다.
"신입 회계사가 하던 일들을 AI가 하고 있다. 일주일 분량의 자료 수집과 분류를 AI가 불과 20~30분 만에 해내니까요."
기술업계의 경고는 연일 수위를 높인다.
"이제 개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
물론 내 주변의 회계 인력들은 아직 위치를 지킨다. 아직 함께 일하던 개발자들도 그대로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아직'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마치 TV가 보편화된 다음에도 '아직' 라디오 산업이 살아 있고, 디지털 뉴스의 시대가 왔지만 '아직' 종이 신문 업계가 있는 것처럼. '아직'이라는 조건을 걸고 수많은 업의 종말이 유예되어 있다.
산업이나 직업의 가치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가치 있는 분야에서 먼저 시작될 수도 있다.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인 영역에서 인간이 가장 빨리 밀려난다는 역설의 시작일 수도 있다. 언론의 돋보기가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광고, 예술, 방송 등의 업계에서도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이미' 대량해고가 예견되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이미' 조짐이 보이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최소한 인턴이 하던 일은 이제 AI가 하면 된다.
모든 것은 시간 그리고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한창 불이 붙은 피지컬 AI는 이 변화에 속도를 더하고 시간을 단축시킬 것이다. 인공피부를 입은 로봇 교사가 아이를 돌보고, 미소를 장착한 로봇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게 몇 년 뒤면 가능해질까? 2년 전, 나는 그래도 10년 15년 뒤를 생각했다. 이번 CES 이후, 나는 그날이 3년 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콘셉트에서 상용화까지 걸리는 시간도 AI의 시대에는 그 속도가 다르다. 과거에는 CES에서 시연된 기술이 소비자의 일상으로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그 속도조차 빠르다.
인간이 개입한 작업물과 순수 AI로만 제작된 결과물은 퀄리티가 다르기에 아직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고 있는데, 원하면 AI로도 비슷한 글을 쓰게 할 수 있다. 명령에서 출력까지 5분이면 된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투입하는 리소스도 성과의 일부라고 할 때, 어느 프로세스가 더 성과가 있는지 평가할 수 있을까?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기획력을 갖춘 인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안심이 된다. 하지만 기획이 잘 된 프롬프트를 AI로부터 뽑아내거나, 친절한 선행자들이 온라인에 뿌려둔 정교한 프롬프트를 이삭줍기하는 일도 흔해지고 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 지금 이 글, AI가 쓴 글은 아닐까? 어떤 글이든, 작가가 직접 썼다고 자신해도, 진실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창작물처럼 느껴지는 AI는 이미 특이점을 넘었기 때문에 알아볼 수가 없다. 인간 속에 녹아들어 투명해진 '인공 인간'들은 비가시적이기에 인간이 의식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어설픈 결과물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 봐. AI가 아직 사람 따라오려면 멀었다니까?"라고 자신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현상, 이미 이미지 영역에서는 현실이다. 이제 어떤 AI 생성 이미지는 감쪽같다. 실제 인간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구분이 안 가는 이미지들이 얼마나 웹에 올라오고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직' 괜찮다고 안심하기엔, 심상치 않다. 인공색채가 묻어나는 일부를 아직 멀었다고 믿을 때는 지났다. 특이점은, 아마 훗날 우리가 이 시기를 돌아볼 때, 이미 지나 있을 것이다. 아마 챗지피티였고, 아마 AI가 찍어낸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사태였으며, 제미나이가 챗지피티를 앞선 순간이었고, 나노바나나였을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이미 인간 다음의 시간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니 이 변화 속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을 일을 찾기보다 더 신속하게 새로운 일들을 찾아내야 할지 모른다. '수성전'으로 돌입하기에는, 이미 우리 안에 우리의 대체제가 들어와 있기에. 점점 구분할 수 없기에, 얼마간은 괜찮겠지 같은 생각은 안일할 수 있다. 인간이 하던 일이 아니라, 하지 않던 일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이런 관점이 과한 우려이고, 모두에게 변화 속에서 설 자리를 마련할 충분한 시간이 있기를, 나도 바란다.
(202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