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2015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에 첫 직장에 들어갔으니 벌써 일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시간이 빠르다. 되돌아보면 나름 재미도 있었고, 즐겁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고, 분노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다. 제법 스펙타클한 전환들을 거쳐서 지금에까지 이르렀는데, 세어보니 퇴사를 한 10번 정도 했더라. 이쯤 되니 경력도 없는 것 같고, 잘 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고, 계속 일하고 싶은 직장을 못 찾은 건 내 스스로에게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책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번에는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남겨보고자 할 뿐이다.
#1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꾸준히 했던 생각이 있다. 나는 절대 대기업에서 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물론 그쪽에서 뽑아주지도 않겠지만, 만에 하나 뽑아주더라도 적응을 못해서 괴로워하다 그만둘 거라는 게 갓 20살이던 시절의 내 눈에도 선하게 보였다. 학교를 다닐 때 교복을 입는 것도 괴로웠고(패션에 관심이 없는데도), 시키는 일을 그냥 따라야 하는 것도 괴로웠고, 윗사람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하는 순간도 괴로웠고, 내내 앉아서 좋아하지 않는 과목을 공부하고 관심 없는 과제를 해야하는 순간들이 지독하게도 괴로웠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내게는 가능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내 눈엔 대기업에서 일하는 건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정장을 입어야 하고, 왜 일하는지 모른채 일해야 하고, 상사의 말을 들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물론 당시 20대 초반이던 나의 굉장한 편견이긴 했지만, 그 땐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그래서 대학을 다니면서 단 하나의 자격증도 따지 않았다. 이론 공부가 너무 지긋지긋했기에 시험을 보는 전공 과목의 성적은 전부 C+이었고, 흥미가 있거나 과제로 대체하는 과목들의 성적은 거의 A+였다. 다행히 공부를 별로 안 해도 되고 재밌을 것 같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과제가 많은 광고 전공을 선택했기에 학점은 아주 나쁘진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4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 나는 그 흔하다는 토익도 보지 않고, 단 하나의 자격증도 따지 않은 채, 인턴과 대외활동도 하지 않고, 졸업과제만 딸랑 제출하고 졸업했다.
당시 나는 캘리그라피에 잔뜩 빠져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걸 보고 네가 하면 나도 할 수 있겠지, 하고 당장에 펜을 사서 혼자 글씨를 연습하기 시작했던 게 계기라면 계기였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취미는 3년차가 되었고, 나름대로 실력도 늘어서 어느 브랜드의 광고 카피를 만들기도 하고, 작은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종로3가역에 가보면 아직도 내가 쓴 글씨가 붙어있다(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2024년까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작은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한다는 사람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서 혹시 사람 구하시냐고, 나 당신이랑 일해보고 싶다고 무작정 제안했다.
그렇게 첫 직장이 생겼다. 당시 월급은 120만원. 아니 110만원이었던가? 호텔 조리사로 일하던 사람이 쿠킹 스튜디오를 인수해서 다양한 클래스를 열고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소품 등을 판매하는 그런 곳이었다. 재밌을 것 같았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대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 같아 보여서 더 좋았다. 같이 회사를 키워나가면서 월급도 점점 올려줄테니 재미있는 일을 같이 잘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일했던 두 달간, 대표는 정시 출근을 딱 두 번 했다. 그것도 전 날 회사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올 수 있었던 거였다. 나는 주 6일을 출근을 했고, 혼자 사무실에서 제품 사진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주말엔 대표가 촬영을 하자고 데려간 캠핑장에서 8인용 텐트를 혼자 쳤고, 사무실에 방치된 음식물 쓰레기들을 버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결정한 거니까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위 사람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어느 날 대표가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고등어를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라고 했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쓰레기봉투는 수거도 해가지 않아서 결국 다시 회수해야 했다. 내 돈으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사서 옮겨 담으려고 고등어를 드는 순간 썩은 생선이 후두둑 손에서 떨어지며 그 물이 얼굴에 튀었다. 나는 그 날 퇴사를 결심했고, 앞으로는 아무리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라도 실제 행동을 보지 않고는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
나름 꿈꿔왔던 첫 번째 일에서 너무 학을 떼고 나니 기대가 없어졌다. 알바몬인가 알바천국이었던가에서 발견한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던 작은 바이럴 마케팅 회사에 지원했다. 오피스텔을 개조해서 사장은 안방에서 살고, 나머지 작은 방에서 직원들이 일하는 작은 회사였다. 일은 주로 입시학원과 성형외과, 한의원의 블로그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월급은 180만원이었는데, 대표는 이게 다른 곳보다 꽤 많은 금액이라고 항상 얘기하곤 했었다. 나중에 퇴사할 때가 돼서야 퇴직금을 주기 싫어서 이 돈을 매달 사업자로 처리해서 지급하고 있었단 걸 알았다.
아무튼, 일은 쉬웠다. 단순한 일이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내 좋지도 않은 학벌이 거기선 나름 엘리트였고,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다. 어려운 일이 들어오면 나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난 그 때 한의원에서도 암치료를 한다는 걸 처음 알았고, 그걸 홍보해야 했기에 한자와 영어가 섞인 논문을 받아들고 공부를 해야했다. 처음 3개월은 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던 대표가 내 인사에 대답해주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일 년 쯤 일하자 갑자기 대표가 직접 불러다 놓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혼내는 일이 많아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승진을 시키려고 그랬다고 했다. 나는 욕을 먹으면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대학원을 가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한 뒤 퇴사했다. 대표는 역시 이래서 학벌 좋은 애들은(다시 말하지만 좋지 않다) 다들 빨리 나간다면서, 나중에라도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했다. 나는 당신 때문에 나가는 것이며 죽어도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진 않았고, 대신 마지막 회식자리에서 제일 비싼 한우 차돌박이를 왕창 먹는 걸로 대신했다.
#3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나니 좀 허무해졌다. 다음엔 뭘 해야 하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아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긴 한 건가? 엄마는 계속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말했고,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광고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었는데, 다들 힘들다고 말했다. 그 때는 정말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프랑스인 친구가 생겼다. 역삼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언주역 어떻게 가냐며 말을 걸었고, 신호가 무지하게 길었던 덕분에 같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쯤엔 카톡 아이디를 교환하고 또 보기로 약속까지 했다. 내가 사회에서 만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아가는 첫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회계사로 일하다가 회의가 들어서 서른살에 개발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너도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말했다. 할 수 있다고. 그 친구 덕분에 다시 내가 무슨 일을 배우고 싶은지, 잘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