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심이 들었다.
#8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은 확실히 기억난다. 평소와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누워서 잠들기 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주르륵 하고 눈물이 흘렀다. 어, 이거 뭐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 일어나니 위기감이 들었다.
나는 꽤나 체력이 좋고 튼튼하게 태어난데다, 외로움도 별로 타지 않고 무던한 스타일이라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화나고 짜증이 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나는 건 처음이었다. 갑자기 왜 이래? 처음엔 그저 당황스러웠다. 일도 하고 있고 돈도 벌고 있고 잘 먹고 잘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처음 느꼈던 효능감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반대급부로 따라오던 불안감이 방치하던 새에 점점 커져서 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일 외에 만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일이 바빠지며 남자친구와는 소원해져 자연스레 헤어졌고, 이사를 한 탓에 아는 사람이 근처에 하나도 없었다. 매일 일어나서 똑같은 일을 하고 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일을 하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외출하는 일도 없이 다시 잠들었다. 가끔 촬영을 나갈 때도 있었지만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는 것이니 대화할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었다. 사실은 방충망에도, 인스타 핫플이며 맛집에도 관심이 없고 웨딩사진도 왜 찍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매일매일 그걸 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타박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하잖아. 세상에 누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어? 뭐가 됐든 일은 해야 되는 거고, 심지어 재택으로 편하게 일하면서 돈도 버는데, 대체 뭐가 문젠데? 사람들을 만나면 평소처럼 웃고 대화했지만 사실은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자아가 없어진 것 같았고, 그건 몸에도 곧 이상신호를 일으켰다.
돈도 꽤 벌었고 그게 뿌듯했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효능감은 물거품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200만원을 버나 500만원을 버나 차이를 잘 못 느꼈다. 아무리 편하고 사람들이 부럽다고 해도,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면 일에서의 보람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고, 그걸 유별나게 못 견디는 인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왜 이럴까, 수도 없이 자책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네가 못 견디는 건 네가 그냥 나약한 소릴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채근해봤자 소용없었다.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계속해서 쌓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뭔가 바뀌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집 앞의 헬스장을 찾아가 PT를 끊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선생님은 첫 네 달간 운동을 갈 때마다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딱 두 개만 시켰다. 태어나서 운동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토할 것 같이 힘들어도 운동이 끝나면 드는 개운함이 있었고, 집 밖으로 나갈 곳이 헬스장 밖에 없었어서 겨우 견뎌냈다. 그렇게 네 달간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만 하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왜 계속 힘든가요?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지면 덜 힘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운동은 원래 계속 힘든 거예요. 10kg 들다가 익숙해지면 20kg를 들고, 20kg에 익숙해지면 30kg를 들어야죠."
"그럼 계속해도 끝없이 힘든 거예요?"
"네. 원래 그런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좋은 대표나 회사를 만나면, 지금 내 환경이 좋아지면, 막연하게 시간이 지나면, 그러면 힘들지 않을 거라는 허황된 꿈을 좇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어딘가에는 100% 나에게 딱 맞는, 이상적인 환경과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약간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운동을 매일같이 나갔다. 그동안 불규칙하게 보냈던 일상들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집밥을 챙겨먹고, 바닷가 산책을 가고,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에 들었다. 여러 모임을 나가면서 친구들도 사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일들을 시도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돈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던 일들을 시작했다는 거였다. 프리랜서로 처음 일했을 때엔 시간이 곧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벌지 못하는 일에 시간을 쓰는 걸 두려워했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걸 시간과 돈으로 환산해서 야박하게 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기로 결심하고, 마음이 내키는 일들로 일상 속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운동을 하다가 알게 된 운동센터 대표의 홍보물을 만드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비용 때문에 제품 사진을 찍기 어려운 작은 회사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여전히 방충망 홍보를 하고, 얼굴만 바뀌는 웨딩 스냅을 찍었지만 우울감은 가시고 작은 만족감과 행복이 쌓였다. 조금씩 균형이 잡히고 있다고 느낄 때 쯤, 우연히 알게 된 분이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공공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 작은 회사였는데, 버는 돈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기도 하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야였기에 조금 고민하다가 주 3일 일하는 것으로 합의한 뒤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입사한 2020년 1월에, 코로나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