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를 보는 건 배려를 하기 위함이지, 라는 나의 말에 단호한 태클이 들어왔다.
눈치는 특히나 상황이 부정적일 때 결국엔 나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고 배려는 상황이 어떻든 상대방을 위한 좋은 의도라는 설명이었다.
라디오 생방송이었다면 방송 사고였을 약 3초의 정적이 지났지만 난 잘 이해가 안 됐다.
이어지는 대화에도 마음은 그곳에 박혀있었고 그 화살을 밀어 빼든 뽑아내든 시원하게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태클에 내 공을 뺏긴 마음이라기보다 내 잘못된 드리블을 깨닫는 순간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한 배려가 너에겐 눈치로 보였을지 모르겠다. 짐작컨대 그 눈치가 너의 배려였을 수도 있겠다.
말장난 같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말: 배려와 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