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oomerhong Jun 02. 2021

보내지 못할 편지

pisa, 2019


M에게.


첫 운을 떼는 게 가장 어색한 거 같아.

특히 편지를 쓸 때는 말이야.

안녕이라고 할지 오랜만이다라고 시작할지. 결국엔 안부를 묻는 말들일 텐데.

그러니까 어떻게, 잘 지내? 잘 지내지?


그곳 날씨는 어떤지. 가족들은 잘 지내는지. 오늘은 뭘 먹었는지. 그냥 소소한 호기심 같은 그것들이 궁금하더라. 혼자 이래저래 짐작도 해봤어.

제일 먼저 강아지 이야기를 해줄 거고 그리고 그 사진 한 장 보내주겠지. 다행스러운 부모님의 안부도 알려주고. 이곳은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날씨가 너무 좋다고도 말이야.


근데 그러고 나서 다음 할 말이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고. 아마 대화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아닌 거더라.


지금 밖에 달이 떴는데 그게 너무 밝고 예쁘다고.

다섯 시간 빠른 거기에서도 이 달이 보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어.


우리 그때, 그날, 그 달은,

아슬아슬하게 새초롬한 초승달이었는데

벌써 몇 번이나 차고 기울어서 오늘은 보름달인 게 그냥 괜스럽더라고.

같지만 다른 시간을 보내는 달력이 야속하기도 하고 말이야.


괜한 말들이다. 적어놓고 보니까 더 그러네.

이 편지는 아니더라도 나중에 크리스마스 카드 정도는 보내도 되려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게.

그러니까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


그럼 안녕.


2021년 6월 첫 번째 날.


H로부터.


작가의 이전글 눈치와 배려, 배려와 눈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