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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ia Sep 15. 2020

혼영을 좋아하십니까

소심한 까칠쟁이, 생애 첫 혼영의 추억

# 혼영, 혼밥, 혼술의 두려움


4년 전쯤, 동창 친구(여자)가 감자탕 집에서 혼자 소주 반주를 하고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에게 집에서의 혼술은 상습적이고 일상적이었으나,

밖에서 혼술이라니, 혼밥도 아니고 혼술이라니.


아무리 치안이 좋은 대한민국이라 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 치안보다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서가 더 큰 이유일 거다.

엄마랑 다투고 속이 끓어 새벽 1시에 집 앞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혼자 새우깡에 소주를 마신 적은 있으니.

손님이 나밖에 없더라도 서빙하는 직원 최소 1명이라도 누군가 나를 볼 수 있는 곳에, 한 공간에 있다면 혼자 술을 마실 수 없었던 게 분명하다.


나의 동창 친구는 그 날 나와 통화를 하다가, 취기가 올라서는 서빙하는 아줌마들이 자꾸 자기를 쳐다본다며 나지막이 욕을 중얼거리다가, 힘든 얘기를 주절주절 털어놓다가, 화장실을 간다고 했는데,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공간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뚝, 끊어져 버렸다.


너무 놀라고 걱정돼서 몇 번이고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친구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어째야 하나 동동거리고 있는데 30분쯤 지나 전화가 왔다.


"X발."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전화기를 빠트렸단다(어디에-라고는 굳이 쓰지 않음).

무사히 집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나는 확신했다.


주변 시선 뿐만 아니라 만취하면 개가 되는 나 자신을 못 믿어서라도 혼술은 역시 안되겠다고.


사실 나는, 마냥 까칠한 겉과 달리 말도 안되게 소심해서, 혼밥도 그나마 최근에 가능해졌다.

한국식 밥집은 여전히 도전한 적 없고,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먹는 것까지가 나의 혼밥 최대치다.


바깥 생활을 시작한 대학생 때부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은 혼자 못 사먹었다.

수강신청도 혼자 해버리고, 인싸보다는 아싸여서 항상 혼자 어디 가서 담배를 피우면서도

이상하게 혼자 밥을 먹는 건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웠다.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서 혼자 먹어야 한다니.

스스로가 처량하고 초라해져서 싫었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내가 혼밥하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하찮게 볼 것 같은 생각에 배고픔을 참았더랬다.



# 생애 첫 혼영에 도전하다


영화관은 남자랑 가는 거다.

가끔 효도 차원에서 엄마랑 가기도 했지만, 영화관의 정석은 데이트다.

여자 친구들이랑 영화를 보러 간 적은...아마도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때 19금 영화 보겠다고 친구랑 화장하고 간 적이 있었구나.)

아무튼 영화는 남자랑 보는 거다.


이직을 하면서 잠들기 전까지, 주말에도 밤낮으로 끝없이 카톡 업무가 이어졌기 때문에, 영화관을 가는 게 연례행사 수준으로 줄어버렸다.


퇴사할 즈음엔 이미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여서, 영화관을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CJ CGV 주주로서 주가가 떨어질 게 걱정스러웠을 뿐.

특히나 남들 시선 그렇게나 의식하는 내가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를 움직이게 한 영화가 생겼다.


남아도는 시간을 만끽하며 새벽에 영화채널을 보다가, 꽂혀버린 거다.

앞부분을 보면서 아, 퀴어인가 보다 싶어 채널을 돌릴까도 생각했지만(혐오는 없지만 딱히 애호도 아니다)

이런. 주인공들도, 경치도, 햇살도, 너무 예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 2017)

a.k.a 콜바넴.

티모시 샬라메(엘리오 역), 아미 해머(올리버 역) 두 남자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을 그린다.



이탈리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푸르르다.

오래된 벽돌이지만 정겨운 냄새가 날 것 같은 별장, 따사로운 볕에 바짝 말라 햇살 향기가 묻어날 듯한 침대,

싱그러운 복숭아가 조롱조롱 열리는 초록빛 가득한 정원, 푸른 이끼가 낀 석조 연못(수영장으로 쓴다).


따사롭다 못해 뜨거운 햇살 아래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고,

보송하고 빳빳하게 마른 반바지를 입고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는 풍경들이 정말이지 눈부셨다.

한가로운 여름 휴가의 행복감이 나를 가득 채워주는 느낌.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낄 남자와 소년의 사랑이지만

싱그러움과 풋풋함, 애틋함이 넘치도록 담겨 있는 영화다.

퀴어를 싫어하더라도, 사람이라면,

아득한 기억으로 잊혀졌던 사랑의 가슴 벅참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햇볕에 바짝 마른 하얀 이불처럼 순수하고

한여름의 나무 그늘처럼 푸릇하고

갓 따온 복숭아처럼 싱그럽고 달콤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아니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 엘리오의 얼굴 아래 엔딩 크레딧이 흘러간다.

엉엉 목놓아 슬퍼하는 울음이 아닌, 조용히 흐느끼며 굵은 눈물을 흘리는 얼굴.

영화는 그 얼굴을 오래도록 보여준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 있다.

살아가는 동안 경험한 모든 사랑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앞으로의 나를 만든다.

함께할 수 없는 현실은 슬프지만, 사랑의 기억과 가슴에 새겨진 행복이 슬픔을 보듬어준다.

그런 엘리오의 마음이 나도 아파 조금 같이 울었다.


아.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지. 이렇게 예쁘고, 예쁜 영화라니.


첫 장면부터 보지 못한 게 너무너무너무나 아쉬웠다.

첫 장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번 쏘고 지나가버린 전파가 야속할 만큼, 다시 보고 싶었다.


부랴부랴 영화 정보를 찾아보는데, 이건 운명이었다.

마침 이 영화가 재상영 중(6월)이었고, 코로나 시국에 관람객이 너무 줄어든 나머지 영진위에서 평일 할인권까지 주고 있었으며, 퇴사자인 나는 돈이 없는데, 조조(라기 보다는 첫 회차)를 할인 받으면 공짜였다.


영화관은 남자랑 가는 거지만, 남자친구는 출근을 해야하기도 하고, 취향을 강요하는 것은 몹쓸 짓인지라.



두둥.

과연 내가 혼영을 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부터 어찌나 두근대던지.

걸으면 20분, 버스타면 10분인 거리를 택시까지 잡아타고(괜찮아, 영화표가 공짜니까) 5분만에 갔다.


꽂혀버린 이 예쁜 영화를,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공짜로 다시 보다니.

그것도 무려 생애 첫 혼영에 성공하다니!


예전에, 뭔가 야한 영화였던 것 같은데.

내 좌석 옆쪽에, 앞줄에, 혼자 온 아저씨들이 유독 많아서 징그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러간 그 날, 관객 10여 명 중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모두가 혼자였다.


...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그런 거 아니다.

물론 예쁜 남자 둘이 사랑하고, 성적인 장면도 아주 조금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건 그런 성적 탐구욕으로 감상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꼭 말하고 싶다.


첫 도전에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꽂히는 영화가 생기면 혼자 가서 볼 작정이다.(코로나 좀 가라...)

물론 시선 의식할 사람이 가장 없는 평일 오전 시간대로.

뭐, 조금 야한 영화더라도 혼자 보면 어때.

그 아저씨들도 와이프는 같이 보기 싫다고 했을 수도 있지... 어쩌면 제안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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