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지침서
미루기는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우리의 감정, 시간 개념, 사고방식이 얽히고설킨 결과라 한다.
즉각적 보상과 즐거움을 더 선호하거나, 미래에 발생할 감정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혹은 과업을 시작할 때 느끼는 불확실성, 무기력함, 짜증과 같은 감정을 회피하기 위하여 미루기를 한다고 한다.
사실 사람은 미루기를 본능적으로 타고났다. 직면한 위협에 대항할 수 있기 위해 미래보다는 현재에 더 집중하도록 구조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지침서에는 미루기에 관한 몇 가지 질문에 체크하는 자가 진단 리스트가 있다. 독서모임 도중 다 같이 체크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야 라고 여기던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아니요'들에 표시를 했다.
주변에서 '나는 세 개야' '나는 거의 다인데?' 이런 얘기를 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딱 하나만을 체크한다며 뿌듯해하며 다른 사람들의 미루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한참 대화가 진행이 되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약속에 늦는 걸 매우 싫어하는 신랑이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는 나 때문에 가끔 화가 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걸 듣던 옆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가족이 화를 내는데?"
항목 중 '스스로 세운 계획을 따르지 않는 자신에게 친구나 가족이 화를 내는가?'라는 질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당연히 '아니요'라고 체크를 했던 것이다.
나는 '약속'이라는 것이 '스스로 세운 계획'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약속은 만남 같은 것이고 나의 계획은 내가 무언가 할 일 등을 계획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불성설이다. 약속은 심지어 남과 공유한 나의 계획이었다.
그냥 나는, 객관적인 나보다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나를 좋게 평가하는 것이 어떻게 문제점인가 싶을 수 있다. 나도 35년 가까이 그렇게 생각해 왔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고 사실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계기가 생겨 아이의 기질 검사를 받기 전까진.
아이가 어리던 시절이라 주양육자의 기질검사도 같이 진행되었는데 상담사가 나는 너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면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항목 중 당연히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만한 것들도 긍정적으로 판단한 것들이 보이고.. 내가 그래서인지 (기질적인지 환경적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도 너무나 그러하다고.
그게 문제가 될까? 나는 사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나의 모습도 긍정적으로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상담사의 말을 듣고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것이 미숙할 수밖에 없다고. 그것은 결국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고. 사실 괜찮다고 여겼지만 아픈 적이 많지 않냐고.
그랬다. 나는 로스쿨 시절 내내 온몸이 아파 항목별로 돌아가며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결국 시험이 끝나고는 수술을 받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프지 않았고 건강했으나 집에 오면 가족과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앓아누웠다. 내가 그렇게 의식적으로 당연히 느꼈어야 할 부정적인 감정에서 긍정적인 감정으로 도망치는 동안, 머릿속 한 구석에 담겨있는 해소되지 못한 부분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다. 사실 나는 미루기를 자주 한다.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것들을 뒤로한 채, 당장 책임져야 하는 나의 감정들도 뒤로 한 채, 미래의 나에게 모든 책임을 일임해 버린다.
감정 미루기 하는 것을 멈추고, 지금의 부정적인 감정에도 집중하여 해소 할 수 있도록 변해야만 한다.
미루기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미루기는 1초 만에 자연스럽게 끝나버린다.
책에서는 일단 내가 미루기를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미루기를 하려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다양한 해결 방식을 제시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하고, 해결한 후의 보람에 집중을 하기 위해 TO-DO리스트가 아니라 '완료'목록도 만들어 보고. 집중력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게 쉬는 시간도 주어가며 집중 시간을 늘려보라고 한다.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밤에 생각해서 계획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따르기만을 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감정에 대한 미루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직면한 내 감정을 미래의 나에게 넘겨주지 말고 지금 만난 내 부정적 감정을 열심히 곱씹어 보자. 라고 쓰고 싶지만 벌써 도망가고 싶은 이 마음이면 실패인 것일까.
일단 미래의 나에게 또 미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