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뭐가 없는 시골 동네에 버블티 가게가 하루 반짝 팝업스토어로 들어왔다. 한국은 어렵지 않게 공차라든지 버블티 가게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사는 이 삭막한 나라에는 나름 큰 도시에도 몇 개 안 되는 버블티 가게가 있다. 버블티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차 타고 한 시간은 나가야 버블티를 먹을 수 있는 동네에 버블티가 친히 왕림하셨으니.. 이건 사야 해..!!
이름하여 버블티 사기 1차 시도. 이때만 해도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 하이! 반가워! 버블티 한 잔 줘!
- 우리 아직 안 열었어.
- 몇 시에 열어?
- 10시.
- OK, 이따 올게~
그래, 아침 9시는 버블티 가게가 열기엔 좀 이른 시간이지. 좀 기다려다 와야지.
그렇게 다른 커피숍에 가서 앉아있다가 10시가 한참을 넘은 것을 확인하고 달려 나간다.
- 버블티 주문 가능해?
- 아니 아직 전기 연결이 안 되었어.
뭐 이쯤은 비일비재한 일이지. 2차 시도 가볍게 실패.
한 30분을 다시 커피숍에서 기다린다. 창문 너머로 보니 누군가가 버블티를 사고 있다. 나는 다시 달려 나간다. 팝업스토어는 처음인지 준비나 조작이 아주 미숙하다. 느릿느릿한 순서를 기다려 드디어 내 차례.
- 나 버블티 한 잔만! 근데 잔돈 있어?
- 아니 없어. 잔돈 없으면 카드만 돼.
- 그.. 그래? 알겠어 다시 올게.
하.. 하필 운동하냐고 지갑 없이 지폐 한 장만 딸랑 가져왔는데.
이 동네에서는 애플페이만 되고, 내 갤럭시는 무용지물... 나는 또다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버블티 사기 3차 시도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하.. 쉽지 않네 버블티...
그리하여 커피숍에 돌아가 같이 갔던 언니한테 카드를 빌려서 다시 왔다. 4차 시도!
자신만만하게! 주문을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 자 여기!
- Only MADA (debit, 현금카드)
하... 이쯤 되니 슬슬 화나기 시작한다. 아니 처음부터 알려주면 안 되었던가?
네 번째나 와서 못 사고 돌아가는데 Sorry의 S자도 들어볼 수 없이 딸랑 '마다'만을 외치니..
아니 현금카드만 결제될 거면 써 붙여놓든지, 카드 결제 하라 할 때 얘기를 하든지!
이제 버블티가 문제가 아니라 내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4차 시도를 실패하고 난 버블티를 먹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빠졌다.
버블티를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하는가..? 또 가서 달라고 하기 왠지 자존심이 쫌 상하는데...
잠시 고민하고 결론을 내렸다. 언제 또 먹겠어. 식욕이 이겼다. 그래 네가 이겼다...ㅋㅋㅋ
결국 옆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고 잔돈을 바꾼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 되었다.
네 번이나 버블티 가게에 들락거리는 동안 어느덧 해는 중천에 뜨고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햄버거를 먹은 후 버블티를 먹기로 합리화를 하기로 한다.
- 잔돈 가져왔어.. 이제 진짜 버블티를 줘.
버블티 구매 대작전은 5차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말 그대로 '대'작전이 된 셈이다. 이게 뭐라고.
버블티와 햄버거
그렇게 드디어 받은 버블티를 쪽쪽 거리며 먹고 있는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이 사막나라에 왔을 때만 해도 신용카드 결제가 되는 곳이 많지 않았다. 큰 가게에서나 가능하고 대부분은 이 버블티 가게처럼 현금카드 결제 혹은 현금 결제만 가능하곤 했다.
그때 무언가를 사다가 1, 2리얄 정도 금액이 모자라면 캐셔가 쿨하게 '다음에 갖다 줘~'하곤 하였다. 정말 신기한 게 주인도 아닌데 정산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통용되는 정도였다. 작은 구멍가게가 아니라 체인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아이에게 조그마한 초콜릿 같은 걸 집어서 즉흥적으로 선물로 주기도 하곤 했다. 물론 반대로, 자기들이 1, 2리얄 쯤 부족해서 잔돈을 못 주는 경우도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그냥.. 그런 게 되던 세상이었다.
불과 8년이 지났고 모든 곳이 애플페이로 대체되고서는 이제는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우리나라에 정이 있듯, 이 나라에도 그러한 비스므리한 여지가 참 많았는데 핸드폰만 대면 모든 것이 결제되는 이제는 모든 것이 칼 같이 계산된다. 너무도 편리해졌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고속 성장과 변화 한 복판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 몸소 체험이 될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이곳에서, 버블티를 마시며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될 줄 8년 전의 나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