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써 봅시다 책이 뭐라고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은 정말 아주 오래 되었다.
자신이 없어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고 미뤄왔던 것을 지난 여름 휴가때 라는 패기 넘치는 제목에 끌려 책을 한권 사들고 왔다.
"한번 써 봅시다 책이 뭐라고"
여름이 다 지나가고 이 더운 중동나라에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한 조각씩 흘러 갈 즈음되어 스을쩍 한 장 넘겨 본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분야의 전문가다. 그러니 그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글을 쓰면 된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연구원으로 근무를 잠시 하다가 로스쿨으로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나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해외에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와이프와 아이 엄마로서 주부만 9년.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지만 딱히 자랑할 만한 요리 실력도, 정리 능력도 육아스킬도 없는 나의 전문분야는 도대체 무엇인가. 컴퓨터인가 법학인가 주부인가 아이 엄마인가, 아님 그 무엇도 아닌가.
얼마 전에는 이웃 언니들과 동네 카페에 갔다. 카페가 떠나가도록 깔깔거리며 웃어대고 떠들다가,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데 주제를 찾지 못하겠다는 질문을 던졌다.
옆자리 언니의 '여기 삶에 대해 쓰면 어때?' 라는 말에, '뭐 쓸게 있나요 재미도 없을텐데'라는 자신없는 대답을 돌려 줬다.
그 대답에 '아니 이런 재미 없는 곳에서 이렇게 즐겁게 살고 있는데! 쓸게 왜 없어!'라고 말하며 웃는데, 문자 그대로 머리 속 한 구석에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즐겁게 살고있다니!
그렇지.
이렇게 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즐겁게 살고 있다니!
나는 사실 어쩌면 글을 쓰지 못하는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번 써 봅시다 책이 뭐라고'에서 신선수 작가는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떨칠 수 없어서 책 쓰기 관련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을 읽던 중 저자는 김태광 작가의 '유명해서 책 쓰는 게 아니라 유명해지기 위해 책 쓰는 것'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고 유명하지 않아도 책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적었다. 나는 그 저자가 책을 잔~뜩 읽고 느낀 점을 적은 한 권의 책을 읽어 아주 간편하게(?) 자신감을 얻었다. (독서란 얼마나 좋은가!)
그 문구를 곱씹으며, 내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책을 쓰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사실은 어쩌면 유명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이라는 것이 마치 연예인의 인기 같은 유명세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뭐랄까, 소소한 유명 같은? 아는 사람만 아는 유명세?
지난 주인가 지지난 주인가, 의전원에 진학하여 영상의학과 교수가 된 학부 선배는 환자를 진료하며 적은 수필로 한미수필문학상의 대상을 수상했다. 본인이 화제의 인물로 조명된 기사의 캡쳐본을 SNS에 올리면서 이렇게 썼다.
"(엄마랑 와이프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화제의 인물"
딱 그러한 유명을 갖고 싶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알아주는 소소한 유명.
그러한 자극점을 받은지 이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며칠 전에는 로스쿨 동기가 10대 후반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삶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를 제공한 서른 권의 책들에 대한 책을 발간했다. 알고보니 근저에 (생업과 병행하면서도) 책을 쓰는 지인들이 어찌나 많던지! 부러워라!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기로 한다. 한번 써봅시다 책이 뭐라고.
'이렇게 즐겁게' 살고 있는 이야기, 이제 시작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