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온도

빨래냄새 나는 오후의 평화

by blossom



긴 연휴였다.

결혼 후 열 해 동안 명절은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었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아이 둘을 챙기고, 예의와 책임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느라 마음의 여유는 뒷전이었다. 명절은 쉼이 아니라 또 다른 노동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색을 잃는 듯 했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마흔을 맞이한 몸이 신호를 보냈다.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쌓이고 쌓인 수면부족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듯, 며칠 동안 많이 아프고 열이 났다. 왠만한 일에는 병원을 찾지 않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내 발로 병원을 찾았다. 결국 10년 만에 처음, 낯설고 조용한 1인 병실에 누웠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하얗게 번졌다. 링거액이 천천히 흘러드는 속도에 맞춰 내 마음도 조금씩 느려졌다. 내 안의 피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는 이내 평온함을 찾았다.


몸이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이번 긴 연휴는 대부분 집에서 보냈다. 시댁과 친정을 하루씩 다녀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남은 날들을 온전히 나의 속도로, 우리 가족의 시간으로 살아보았다. 신기하게도, 8살과 6살의 두 아들도 잠시 멈춰주었다. 평소라면 에너지 폭발로 온 집안을 뛰어다녔을 아이들이 이상하리만큼 차분히 거실에서 뒹굴거렸다. 그 소소한 고요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집 안의 공기를 천천히 느꼈다.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을 빨며, 한 동안 손대지 못했던 옷장을 정리했다. 여름옷을 접어 넣고, 가을옷을 꺼내 걸었다. 건조기에서 막 나온 옷들에서는 햇살과 비누 냄새가 섞인 따뜻한 향이 피어올랐다. 마음 한구석이 밝아졌다. 나의 일상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증거였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빛이 부드럽게 거실을 감싸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흘러들었다. 그 평화로운 순간, 행복은 언제나 되찾는 것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회복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다. 빨래 냄새가 스며든 오후의 공기, 차 한 잔의 온기, 낡은 마음을 정리하고 비워내는 조용한 시간 속에 회복은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 삶이란 결국 회복의 연속이구나!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식어버린 마음이 다시 따뜻해지는 그 과정이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구나! 오늘도 창가에 널어둔 흰 셔츠 사이로 햇살이 스며든다. 그 빛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내 마음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회복되어간다.


빨래 냄새가 가득한 오후, 평화라는 단어의 온도를 고스란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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