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일상

혼자 버티지 않기

by blossom


며칠 전, 정신겅강의학과 교수님의 강연에 다녀왔다.

강연의 시작을 알리는 첫 질문은 "나를 돌보는 삶인가, 하루하루 사는 삶인가."


당연히 나는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일'에 익숙하다.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처리하고, 메일함의 숫자를 줄이며 안도하고, 모든 것을 끝냈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를 마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몸은 여전히 움직이는데, 정작 마음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이어지는 질문들 역시 아주 단순했지만, 묘하게 심장을 눌렀다.

'하루가 끝나면 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하다고 느낀 적 있으신가요?'

'일을 해도 성취감보다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더 크지 않나요?'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가 할게요라고 한 적 있나요?'

이 질문들에 사람들은 웃었지만 아마 마음 속에 '예'라는 대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나는 늘 잘 버티는 사람이다.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누군가의 부탁을 받으면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며 작은 뿌듯함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자부심, 그것이 내 존재의 근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말의 작은 무게가 점점 나는 누르는 기분이 든다.

내가 누군가를 돕고 있는건지, 아니면 스스로를 희미하게 지워가고 있는건지 알 수 없게 된다.



"몸이 신호를 보내도, 우리는 아직 괜찮다 하고 버팁니다.

하지만 결국 그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달리면 어느 날 갑자기 멈춰서게 됩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며칠 전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노트북을 열고 앉아있다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좀 피곤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탈진이었다.



교수님은 '자기 돌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건 단순히 멋진 말이나 요즘 유행하는 힐링 키워드가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다고 나를 허락하는 일이다.


나를 돌아보자.

늘 남의 일정을 먼저 챙기고 집안의 일, 회사의 일, 시댁의 일정까지 조율한다.

온 세상의 중심이 된 듯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괜찮냐 물어보지 않는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나를 가장 마지막 자리에 세워두었다.


교수님은 말했다.
“영웅이 되려 하지 말라.”

대부분의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 휴식, 지원, 존중받는 관계를 원한다.
그리고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모든 일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함께하는 구조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그 말이 유난히 깊게 꽂혔다. 나는 오랫동안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스스로에게는 이 정도쯤은 해야지라는 압박을, 타인에게는 괜찮아, 내가 할게_라는 친절을 끝없이 반복했다.
결국 나는 내가 만든 의무감의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강연이 끝나갈 무렵, 교수님은 조용히 말했다.

“멀티태스킹은 능력이 아닙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천천히 하면 됩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풀렸다. 늘 동시에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나는 나를 단련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한다는 건, 포기나 나약함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에서 자꾸 한 문장이 울렸다.


“나를 돌보는 삶인가, 하루하루 사는 삶인가.”


그 질문이 너무 단순해서 처음엔 가볍게 들렸는데, 이제는 그 말이 내 하루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하루를 채우는 일엔 익숙했지만, 내 마음을 돌보는 일엔 서툴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나에게 필요한 일은 거의 없었다.


잠깐이라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오늘은 좀 힘들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일을 덜어내는 대신 마음의 자리를 만들어두는 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건 내 안에서는 꽤 큰 일이다.

멈춤이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라는 걸 안다.회복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를 믿는 사람,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 믿음이 등불처럼 내 안에 불을 밝힌다.
그리고 그 빛으로 나는 나를 조금씩 다시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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