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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Aug 27. 2019

혼자 하는 연습 2

겁쟁이의 생애 첫 혼자 1박 2일 여행기-남해

날 며칠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다. 갈까? 갈 수 있을까? 가지 말까? 으... 정말 모르겠다.

이번엔 혼자 해보기 프로젝트 중 두 번째인 혼자 여행해보기이다. 처음엔 꿈도 야무지게 제주도 혼자 여행하기로 정했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고립된(?) 섬으로 간다는 게, 쉽게 돌아올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라도 갔다가 혼자 못 있겠어서 돌아오고 싶어도 아무 때나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거다.

그래서 고민하다 제주도의 꿈은 접고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육지 같은 섬, 섬 같은 육지. 그리고 내 기억에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되었던 남해로 정했다. 그다음은 미션은 숙소 정하기. 혼자 1박 2일로 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라 두려움이 앞섰다. 호텔에서 자는 게 나을지,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는 게 나을지 고민하다 게스트 하우스가 나을 수도 있겠다 싶어 결정을 하고 남해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하고 방문 후기까지 눈알이 빠지도록 읽어봤다. 오랜 검색 결과, 나처럼 겁이 많고 의심이 많은 사람은 여성전용 게스트 하우스가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와중에 평일이라 게스트가 나 혼자일 경우를 대비해 호스트의 성별까지 찾아봤으니 나도 참 유난이다. 유난이야.

내가 찾은 게스트 하우스는 여성전용에 부부가 운영하신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게스트하우스 블로그를 보니 2인실을 1인이 쓸 경우 7만원을 5만원에 할인해준다기에 호스트님께 전화를 했더니 그날은 아직 예약 손님이 없으니 일단 3인실을 3만원에 하고 만약 다른 손님이 있으면 2만원을 추가로 내고 2인실을 쓰라하신다. 이렇게 양심적인 호스트님이라니. 왠지 더 믿음이 갔다.

드디어 결전의 날. 어젯밤부터 계속 심란하고 불안하더니 출발하는 아침까지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엄마한테는 친구랑 같이 간다고 거짓말까지 해둔 터라 마음이 무거웠나 보다. 거울을 보니 여행 가는 사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설레고 즐거워서도 모자랄 판에 이런 얼굴을 하고 여행을 가는 게 맞는 건가 싶다.

모르겠다! 일단 가보는 거야! 일단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댔어!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지난겨울, 겁도 없이 렌터카를 빌려 운전하면서 프랑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막막하고 두려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름 베스트 드라이버란 평을 듣고 있고, 운전을 꽤 오래 했지만 혼자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 가까이 운전하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중간에 빠지는 톨게이트가 나올 때마다 이 길로 그냥 되돌아나갈까? 하는 나약한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른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와는 반대로 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불안해졌다. 그러다 마지막 사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이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깨달았다.

첫 번째 목적지는 원예예술촌. 꽃을 좋아하는 내겐 안성맞춤인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 쪽으로 가는데 창구가 닫혀있고 뭔가 느낌이 싸하다. 휴!!! 관!!! 무슨 박물관도 미술관도 아닌데 월요일에 휴관이라니. 처음 오는 곳이라면 검색이라도 했겠지만 이미 세 번이나 와본 적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온 게 탈이었다. 진짜 말도 안 된다. 집으로 돌아갈까?... ㅠㅠ 정말 집에 가고 싶다...

시작부터 꼬인다. 어째야 하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일단 추스르고 근처에 있는 독일마을 카페에 가서 간단히 뭐라도 먹어야겠다. 전에 왔을 땐 독일마을도 예뻤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1도 예뻐 보이지를 않는다. 사진도 찍을 마음이 안 생긴다.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와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카페에 혼자 간 적은 몇 번 있지만 음료 말고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혼자 샌드위치를 먹는 것도 어색했다. 기분 탓인지 입맛이 없는 건지 꾸역꾸역 먹어도 반 이상은 못 먹겠다. 원래 혼자 여행이 이런건가...

그다음으로 가까이에 있는 해오름예술촌으로 갔다. 입장료가 2,000원밖에 안 한다는 점이 못 미더웠지만 가보기로 했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곳인데 정원은 그나마 예뻤지만 안에 전시물은 좀 아쉬웠다. 2,000원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다는 남해양떼목장으로 갔다. 원조는 따로 있다는데 이제 막 조성 중인 목장인가 보다. 입구에 평소엔 주말에만 연다고 쓰여 있고 아직 준비 중이라고 한다. 양 먹이주기 체험용 바구니를 받아서 목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양들이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다. 털을 깎아서 앙상한 데다 그 털마저 하얀색이 아니라 누리끼리하다. 3시 정각에 한다는 양몰이쇼랑 원반 던지기 체험까지 하긴 했지만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아쉬운 마음에 한 군데라도 더 가보자 싶어 10분 거리에 있다는 '바람흔적 미술관'으로 갔다. 주차를 하고 내리려고 했더니 막 나가려던 참인 커플이 휴관이란다. 이럴까봐 휴관일을 검색까지 하고 왔는데 대체 뭔일이라니. 홈페이지에 휴관일은 화요일이라고 떡하니 쓰여있는데 오늘은 임시휴관? 진짜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ㅠㅠ

이제 더 이상은 어디 갈 마음도 안 생긴다. 해안도로를 타고 숙소로 갔다. 게스트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역시 아무도 없었다. 주인아저씨와 인사를 하고 안내사항을 들은 후 짐만 내려놓고 식당과 마트가 있다는 곳까지 걸어갔다. 원래는 마트에서 컵라면이라도 사다 먹을까 했는데, 중국집이 보이길래 일단 용기 내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운영하고 계셨는데 짜장면과 콩국수 중에 뭐가 맛있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콩국수라 하셔서 시켰는데 맛이 없다. 내 생애 첫 혼밥인데 이렇게 기억되는구나. 내가 입맛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젓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마트에 들러 배고플 때를 대비한 컵라면과 과자, 맥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은 게스트 하우스를 혼자 전세 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으니 주인아주머니께서 오셨다. 직장에 다니셔서 이제 퇴근하셨다면서 마당에서 따온 방울토마토를 챙겨주시고 이것저것 말씀해주신다. 내일 아침엔 두 분 다 일찍 출근하니까 나갈 때 불만 잘 끄고 그냥 문만 닫고 나가면 된다고 하신다. 여긴 동네가 작아서 문단속 걱정은 안 해도 된다시면서.

역시 혼자 1박은 무리였나 보다. 분명 가까이에 주인 부부가 계시고 위험할 것도 하나 없어 보임에도 이 낯선 공간에 혼자라는 사실에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책을 읽어도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아 TV를 보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아까 사다 놓은 맥주도 과자도 생각이 없다. 불을 꺼야 잠을 잘 것 같은데 무서워서 불을 끌 수도 없다. 안 잘 수는 없으니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눕는다. 머리는 쉬지 않고 생각의 태엽을 돌리고 또 돌린다. 차라리 빨리 해가 뜨면 좋겠다. 긴장과 불안 속에 시간은 흐르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든 것 같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으니 밝은 건 아니다. 암튼 차라리 아침이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주인분들은 출근하고 안 계셨다. 일단 음악부터 틀고 어제 설명해주신 대로 토스트를 굽고 버터와 딸기잼을 발라 먹었다. 우유는 평소에 잘 안 먹는 관계로 괜히 먹었다가 탈이 날까봐 먹지 않았다.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남해에 하루 종일 비예보가 있어서 오늘 어딜 갈지 고민이다. 다랭이마을에 가보고는 싶은데 비가 오니 흐려서 잘 안 보일 것 같고, 충렬사만 들러서 하동 쪽으로 바로 올라갈까 하니 어제 못 가본 원예예술촌이 눈에 밟히고... 원예예술촌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니 비가 많이는 안 내린다고 하니 일단 원예예술촌으로 정했다.

인사를 못한 호스트님께 감사의 문자를 보내고 이불을 정리해놓고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왔다. 다행히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다. 40분쯤 달려 원예예술촌에 도착했는데 10시도 안 된 시간인데도 차가 꽤 있다. 빗물을 머금은 나무와 꽃들은 싱그러웠고 정원을 품은 집들은 아름다웠다. 어제는 안 찍던 사진도 많이 찍었다. 비는 오지만 어제보단 훨씬 기분이 좋았다.

다른 데를 한 군데 더 들를지 말지 갈팡질팡하다가 비도 오고 집에도 가고 싶고 해서 집으로 향했다. 어제 운전할 땐 최종 목적지가 낯선 게스트하우스라 내내 마음이 불안했는데 오늘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이역만리 타국에 여행을 가있어도 항상 더 있다가 가고 싶다고 집에 가기 싫다고 징징거렸었는데 이렇게 간절하게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여행은 처음이다.

2시간여를 달리니 익숙한 풍경들이 보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우리 집이다. 톨게이트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 그동안의 불안함이 싹 사라진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불안했고 여행 내내 일이 꼬여 짜증과 후회만 가득했지만 그래도 혼자 여행하기 미션을 클리어했으니 절반은 성공인건가?

암튼 이번 여행을 통해 난 혼자 여행과는 맞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게 깨달았다. 혼자서는 예쁜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입맛도 없어진다는 것. 자꾸 함께 할 그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결국 여행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이라. 내가 겁이 유난히 많고 외로움을 많이 타서일수도 있지만 당분간은 혼자 여행은 안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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