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셜리 Aug 14. 2019

혼자 하는 연습 1

episode -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병이다. 병이야...

회사 공사 관계로 예년보다 여름휴가가 길어진 올해. 하루도 온전히 집에 있질 못하겠다.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아마 그동안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만큼 지금의 쉼이 너무 간절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럴 거다.


오늘은 한적한 북카페 겸 책방에 가서 여유롭게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읽어볼까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는데, 준비하는 중에도 두 마음이 저울질을 한다.


' 어차피 책만 읽다 올 거면 오늘 집도 비는데 시원한 집에서 맥주라도 마시면서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하는게 낫지 않나? 아니야~ 그래도 집에 있다 보면 늘어지게 되고 책도 안 읽고 결국은 안 나간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잠시 고민하다 계획대로 책방에 가기로 했다. 날씨는 덥지만 하늘은 파랗고 흰구름도 뭉게뭉게 너무 예쁘다. 에어컨을 켜서 덥지도 않으니 차 안에서 보는 날씨는 완전 가을 같다. 파란 하늘로 안구정화를 하며 차로 40분 정도를 달리니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초록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1분쯤 가면 예쁜 전원주택 같은 집이 몇 채 보인다. 그중 첫 번째 집이 바로 책방이다.


마당으로 들어가니 채송화, 백일홍,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까지 예쁘게 가꿔 놓으셨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장님만 계시고 아무도 없다. 1층엔 서점과 차 마시는 공간이 있고 2층 다락방엔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층에 사장님과 둘이 있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다락방이 주는 낭만과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이끌려 다락으로 올라갔다. 장미차를 시키고 책장에서 글보다 그림이 많아 보이는 책을 한 권 골라 창가에 앉았다. 찻잔이 작아서 소주잔 같다.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듯 차를 마시니 술을 마시는 기분이다. 책을 읽으려는데 자꾸 눈이 밖으로 향한다. 좁다랗고 긴 창밖으로 보이는 건 오로지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빛 벼와 나무들 뿐이다.

사람이 없어서 좋긴 한데 낯선 사람과 단 둘이 한 공간에 있으려니 묘한 긴장감과 약간의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음악을 틀어놓긴 했으나 내겐 음악이 들어오지 않는다. MR을 제거한 조용한 책방에 들리는 소리라곤 둘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가끔씩 내가 차를 홀짝이는 소리뿐... 아... 왠지 불편하다. 올 수 있을 만한 지인들에게 오라고 톡을 보내본다. 와보면 좋아할 거라 꼬드겨서... 그러나 아무도 올 수 없단다.


요즘은 혼자 밥 먹기, 혼자 카페 가기, 혼자 공연 보기, 혼자 여행하기 등이 정말 너무도 흔한 일이지만 나에겐 아직 낯선 일들이다. 그래서 지금 연습 중이다. 그런데 혼자 하는 연습을 하려고 나와놓고 혼자가 두려워 또 누군가를 찾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난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나이가 드니 시간이 맞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더구나 마음까지 맞는 친구 찾기는 더 어렵다. 물론 아직은 마음까지 맞는 친구가 있긴 하지만 내가 떠나고 싶을 때 항상 함께 할 순 없으니 그 언젠가를 위해 혼자 무언가를 해보는 연습을 하려던 중이었다.


암튼 누구라도 와줬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 좁다란 길에 차 한 대가 들어선다. 5분쯤 후 모녀가 들어서서 주문하는 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다시 10분 후 또 차가 한 대, 두 대... 이렇게 구석에 있는 작은 책방을 다들 어찌 알고 찾아왔을까~ 그 덕분에 1층 책방은 활기를 띤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1층에 내려가 책들을 쭉 둘러본 후 책방을 나왔다.


책방 바로 근처에 있는 도깨비 도로 체험을 하며 혼자 신기해하고(혼자 신기해하는 건 참 재미없다) 가까이 있는 절에 가서 혼자 조용히 둘러보고 나왔다. 절 입구에 쓰여 있는 '아니 오신 듯 다녀가소서'라는 글귀처럼 조용히.

매거진의 이전글 역마살 모녀의 북해도 여행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