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앞에 무릎을 꿇다!

삼겹살은 언제나 옳다!

by 앤 셜리

몇 주 전부터 아랫입술에 미세한 경련과 함께 약간의 마비 증상이 있었다. 당연히 별일은 아니겠지만 혹시 구안와사나 뇌졸중의 전조증상이면 어쩌나 싶어 갈까 말까 고민하다 증상 발현 후 1주일 만에 한의원을 찾았다.

증상을 얘기하니 혹시 최근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냐고 물으신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심한 두통만 없다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근데 진맥을 해보더니 아랫입술 떨리는 건 문제도 아니란다. 일단 맥도 약하고 폐와 심장이 기능이 너무 약해져 있단다. 배를 꾹꾹 눌러보더니 위장도 너무 뭉쳐있고 온 몸의 순환이 잘 안 되고 있단다. 결국 멀쩡한 곳이 없다는 얘기네. 총체적 난국이다.

평소에도 내가 가끔 좀 이상이 있나? 싶었던 곳을 콕 집어 얘기하니 한약이나 한 재 팔려고 부풀려 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약발이 참~ 안 받는 나지만 속는 셈 치고 또 먹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한의사 선생님께서 주의사항을 알려주시는데 술은 절대 금지!에, 내 체질상 돼지고기는 안 맞기 때문에 약 먹는 동안만이라도 특히 기름기 많은 삼겹살은 먹으면 안 된다 하신다.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 나로선 한 달 동안의 금주령이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약을 먹은 후로 술 마실 일이 자꾸 생긴다. 평소엔 마셔라 마셔라 해도 잘 안 마시는 술이지만 못 마신다 생각하니 맥주 한 캔이 더 간절해진다.

그래도! 치명적인 치맥의 유혹을 두 번이나 뿌리치고! 싱싱한 광어회에 소주 한 잔의 유혹도 뿌리치고! 오랜만에 만난 정겨운 사람들과의 맥주 한 잔도 눈물을 머금고 뿌리쳤다. 이 놈의 한약 때문에 인간관계 다 끊기게 생겼다고 투덜거리며...

그렇게 3주를 버텼는데 오늘 저녁, 삼겹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에 고소하게 퍼지는 삼겹살 냄새, 매콤 달콤한 파절이, 얼얼하게 매운 청양고추에 입이 미어지게 싸 먹는 상추쌈까지... 요런 놈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더란 말이냐. 다 먹고 설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먹어야겠다. 이 맛있는 건 대체 왜 나랑 안 맞는다니~ 안 맞아도 할 수 없다. 삼맥까지 하지 않은 걸로도 충분히 잘 참았다. 역시 삼겹살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