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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Jul 23. 2020

그렇게 또다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pisode- 2020. 1.15.~1.16. 포르투갈 포르투

이 여행기는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작년 겨울 프랑스에 다녀온 이후 다시는! 아니 당분간은! 유럽에 갈 일은 절~~~ 대! 없을 거라며(긴 비행시간, 소매치기, 차량 강도, 비싼 물가, 저질체력, 다섯 번째 유럽... 기타 등등 안 갈 이유는 차고 넘쳤다) 호언장담을 했던 내가 무언가에 홀린 듯 또다시 포르투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밤에 떠나는 비행기라 하루 통째로 휴가를 안 쓰고, 오후에 조퇴를 쓰기로 했다. 2주나 자리를 비워야 하니 일찍 가서 급한 업무를 처리하려고 평소보다 30분 먼저 출근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인터넷 서버 장애로 회사 전체에 인터넷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인터넷이 안 되니 결재도 안 되고 메신저도 안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 새로고침을 누르는 것뿐. 담당부서에 알아보니 서버 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수리기사님이 오고 계시니 일단 기다리란다. 할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마음만 초조해진다. 게다가 떠나기 전에 연말정산까지 처리하고 가야 해서 마음이 더 조급하고 불안해진다.


그렇게 기다리길 2시간 만에 인터넷이 연결됐다. 일단 빨리 급한 결재부터 올리려는데, 계속 오류가 뜬다.  짜증이 목까지 차오를 때쯤 몇 번을 다시 올린 끝에 가까스로 결재를 올렸다. 자, 그다음은 연말정산. 국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예상외로 원활이라며 파란 스마일이 떠 있다. 근데 인증 단계에서 몇 번을 다시 해도 더 이상 진행이 안되고 먹통이다. 아~~~ 화가 난다. 번뜩! 같이 여행 가는 친구 생각이 났다. 걔도 이거 하고 가야 한댔는데 했는지 물어봐야겠다. 전화를 했더니 좀 전에 국세청에 들어가서 자료를 다운받았단다.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자기도 계속 안 돼서 국세청에 전화를 했더니 크롬을 설치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라 해서 그렇게 했더니 바로 되더란다. 전화를 끊자마자 크롬을 깔고 국세청에 들어갔더니 바로 된다! 이럴 거면 공지사항이라도 띄워주지!!! 연말정산 자료를 넘겨주고 남은 업무처리까지 마저 하고 조퇴를 달고 퇴근을 했다. 출근을 했다가 공항으로 간 적은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일단 집으로 가서 미처 못 싼 짐을 마저 싸고 당분간은 못 누울 나의 침대에 누워 잠시 쉬었다가 언제나처럼 멀미약을 먹고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 이제부터 지옥문이 열리는 것인가...


3시간여를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출전을 앞둔 장수의 마음으로 출국 전 마지막으로 한식을 먹었다. 보통은 순두부찌개를 주로 먹는데  분명 매운맛이랑 쌀밥이 그리워질 거라며 고민 끝에 평소엔 잘 시키지 않는 매운 짬뽕밥을 시켰다. 군침을 한 번 크게 꿀꺽 삼키고 한 숟가락 떴으나 기대했던 맛이 아니다. 역시 평소에 안 하던 짓은 하면 안 되나 보다. 맛이 없다~~~


공항에 도착한 지 그렇게 또 3시간이 흘러 비행기에 탔다. 두바이까지 비행시간은 약 10시간. 자리가 불편하니 잠도 잘 못 자겠고, 영화를 두 편이나 봤는데도 겨우 절반밖에 못 왔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더 이상 버틸 체력도 남아있지 않아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통과의례처럼 퉁퉁 부은 얼굴로 두바이에 도착했다. 또 발은 얼마나 부었는지 넉넉했던 운동화에 발이 꽉 낀다. 한 발짝 내디뎌보니 발바닥에 시루떡을 붙여놓은 것 같이 무겁다. 이게 내 발이 맞나 싶다. 이런 느낌 진짜 별로다.

그래도 일단 1차 관문은 통과!


환승 수속을 마치고 출국 게이트에 자리가 없어서  맥도날드에 앉아 감자튀김을 씹으며 남은 비행시간을 계산해 보다 우린 순간 멘붕에 빠졌다. 비행기표 예약할 땐 두바이에서 포르투까지 길어야 4~5시간 걸리겠지 뭐 하고 대충 생각했는데,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두바이와 포르투갈의 시차였다. 한국과 포르투갈은 9시간. 두바이와는 5시간의 시차가 있다는 걸 생각 못한 거다. 즉 두바이와 포르투갈은 4시간의 시차가 있는 거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계산해보니 세상에 9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인터넷으로 다른 항공편을 검색해 봐도 역시 9시간... 지도를 확인해 보니 포르투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지금까지 온 만큼을 또다시 가야 한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진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두바이 면세점을 바퀴나 돌아도 보딩 시간이 멀었다. 온몸을 비비 꼬며, 지루했던 4시간을 버텨내고, 우린 그렇게 두 번째 비행기에 올랐다. 포르투로 가는 비행기는 다행히 좌석이 남아서 내가 세 자리를 통째로 쓸 수 있었다. 처음엔 점잖게 앉아서 갔지만 1시간 만에 난 부끄럼도 내던지고 의자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며 영혼이 탈탈 털려 갈 때쯤 , 좌석벨트 등이 켜지더니 곧 착륙한다는 기장님의 반가운 멘트가 들린다. 이제 해방이구나!!! 살았다!!!


곧 탈출할 수 있다는 기쁨에 착륙 장면을 스크린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비행기가 이미 엄청 낮게 날고 있는데도 공항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다. 꽤 오랜 시간을 낮은 고도로 날고 있으니 이러다 부딪히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오고 동시에 멀미 증상도 시작됐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다.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아... 스크린을 보는 게 아니었는데... 이미 늦었지만 급하게 멀미약을 먹어본다. 내 걱정과는 달리 아무 일 없다는 듯 비행기는 포르투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난 멀미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좀비처럼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픽업 서비스를 신청해놔서 픽업 기사님을 만나 간신히 인사만 하고 차에 탔다. 타고 보니 우리 둘이 타기엔 과하게 좋은 벤이었다. 그러나  따위에 감격할 정신이 없다. 조금이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큰일(?)을 치를 것 같았다. 식은땀을 흘려가며 눈을 꼭 감고 숙소에 빨리 도착하기를 기도한다. 바닥이 자갈이라 차가 덜컹거린다. 윽... 윽...


덜컹거리는 좁은 길을 20분 정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내가 호텔 라운지 소파에 쓰러져 있는 동안 친구가 체크인을 하고 간신히 룸으로 올라가 침대 위로 쓰러진다. 대체 얼마 만에 누워보는 것인가. 침대에 누우니 다행히  울렁거림이 덜해졌다.


친구는 내 상태를 보더니 오늘은 나가지 말고 쉬잔다. 그래도 포르투 첫날인데 이렇게 보낼 순 없지. 일단 샤워부터 하고 머리만 대충 말린 채 밖으로 나갔다. 호텔에서 가까운 아줄레주(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로 유명한 상 벤투 역에 가서 내일 아베이루에 갈 티켓 예매부터 하고 야경이 예쁘다는 동 루이스 1세 다리로 걸어갔다. 해가 지고 불이 켜지니 포르투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늘 위로 갈매기떼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해서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와~ 내가 정말 포르투에 왔구나. 동 루이스 1세 다리에서 본 포르투의 모습은 그간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할만했다.

저녁은 샐러드와 파니니를 시켰으나 거의 먹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왜냐면 난 지금 포르투에 와있으니까. 몸은 피곤하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로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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