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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Nov 30. 2019

말 그대로 절에 머물다가만 온 마곡사 템플스테이

남들 다한다는 흔한 명상도 없이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 템플스테이~
'조용한 산사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108배와 명상을 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겠다.' 뭐 대충 이런 로망을 갖고 꿈꿔왔던 템플스테이였다.


친구들과 서로 시간이 잘 안 맞아서 혼자 가보려고도 했지만 혼자 절에서 자는 것도 무섭고, 여자 혼자 절에 가면 뭔가 사연 있는 여자 같아 보일 거 같기도 하고 또 홈페이지를 검색해 봤더니 방 문고리가 너무 허술해 보여서 도저히 혼자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참~ 핑계도 많네. 그냥 혼자 가기는 무서운 거지...

그러다 다행히 맞는 날짜가 있어서 친구 셋이 함께 가기로 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종류가 몇 가지 있는데 게으른 우린  고민 없이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닌 휴식형으로 선택했다. 즉 모든 게 우리 자유란 말이다. 주말이라 차가 막힐까봐 걱정을 했지만 휴게소에 들러서 점심까지 먹었는데도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절에서 입을 옷과 어둠을 밝혀줄 후레시를 받아 방으로 향했다. 우리가 묵을 곳은 새로 지어진 곳으로 절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데 징검다리까지 건너야 갈 수 있다. 가보니 뭔가 새것의 느낌이 다. 작지만 욕실도 딸려있다. 이건 마치 한옥민박 느낌? 차이가 있다면 이 곳엔 TV가 없다는 것뿐.

내가 원한 건 이런 느낌은 아닌데... 절 안에 있는 곳은 인원이 다 찬건지 아님 여자들이라 화장실 불편할까봐 배려를 해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을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주 큰 메리트임엔 분명하다. 혹시 어느 방으로 할지 물어보셨대도 상당히 고민했을 거 같다. 쩔쩔 끓은 방을 기대했지만 난방을 미리 해놓지 않아 따뜻해질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바닥이 따끈따끈하다. 옷을 갈아입고 앉으니 딱  황토찜질방 느낌이다. 그래도 계획대로 책을 펼치고 앉는다. 절에 온다고 스님이 쓰신 책으로만 뽑아왔는데 한 번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그리 잘 읽히진 않는다. 책 선택은 실패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왔어야 했다. 그래도 조용한 산사에서 듣는 빗소리는 정말 좋다~~~ 완전 좋다~~~

벌써 5시 10분, 저녁을 먹기엔 많이 이른 시간이지만 산사의 시간표에 맞춰 저녁 공양을 하러 공양간으로 간다. 남기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조심스럽게 음식을 담는데 나물 반찬들 사이에 스파게티가 있다. 내가 잘못 본건가 싶었지만 스파게티가 맞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생각했지만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편견을 갖고 있나 싶기도 하다. 공양도 수행이란 말대로 조용히 공양을 한다. 다른 반찬은 남김없이 먹었는데 미나리무침인 줄 알고 겁 없이 집어왔던 고수는 죽어도 못 먹겠어서 결국 남기고 누가 볼세라 쥐도 새도 모르게 설거지를 한다. 여기선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닦아야 한다. 발우공양이 아님에 감사하며 설거지를 하는데 깨끗하게 먹는다고 먹었는데도 찌꺼기가 많다. 속세에서 했던 설거지와는 좀 다르다. 음식물 찌꺼기가 내 몸에서, 내 마음 안에서 나오는 것 같다... 뭔가 부끄러운 느낌이다..

첫 공양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종소리가 들린다. 시간을 보니 6시. 저녁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보다. 예불에 참여하기 위해 앉자마자 대광보전으로 뛰어간다. 절에는 자주 다녔지만 예불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스님이 들어오시자마자 인사 말씀도 없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신다. 우린 눈치를 보며 스님이 하시는 대로 목탁 소리에 맞춰 절을 한다. 근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간혹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옴마니 반메 흠, 관세음보살... 마하반야...'  30분으로 알고 있던 예불이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예불 막바지에 스님의 '관세음보살'에 맞춰 시작한 절은 대체 몇 번을 한 건지 모르겠다. 한 삼백 번은 한 거 같다. 지난번 스페인 성당에서 너무 개인적인 기도만 한 것 같아서 이번엔 세계평화를 비는 기도를 한다. 장난 아니고, 진심으로~~!!!
절을 마치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김정렬의 숭그리당당은 저리 가라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지 그토록....' 쿨의 노래를 몸소 실천한다.
몇 번이나 주저앉기를 반복하다 깜깜한 길을 후레시로 밝히며 방으로 돌아왔다. 새벽예불은 절대 못 갈 거 같다. 예불체험은 이걸로 끝! 비가 밤새 오려다보다. 빗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낮에 읽다만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그냥 멍 때리고 누워있다가,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산사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과자가 이 와중에 너무너무 먹고 싶다. 있을 리 없다고 하면서도 우린 후레시를 들고 매점(편의점)을 찾아 나선다. 불빛 하나 없는 그 깜깜한 어둠 속을 작은 후레시 불빛에 의지한 채 헤매고 다니다 예상대로 아무 소득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추위에 떨다 따끈따끈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니 온몸이 노곤노곤 녹는다. 바로 잠이 쏟아질 듯해서 읽던 책을 덮고 자려고 누웠더니 갑자기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역시 절에 와도 잠은 오지 않는구나... 내가 외로울까봐 그랬는지 밤새 빗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잠 못 들던 밤이 지나고 새벽 6시. 아침 공양시간이다. 입맛은 없는데 또 배는 고프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이 새벽에도 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절은 여전히  깜깜하다. 방으로 돌아와 양치질만 하고 또 눕는다. 밤엔 그렇게 잠이 안 오더니 아침이 되니 잠이 솔솔 쏟아진다. 다들 다시 꿀잠... 10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일어나 정신을 좀 차려본다. 비가 그치고 해가 반짝 났다.


11시 10분. 점심공양시간이 다 됐다. 공양간에 좀 일찍 도착해서 마곡사를 한 바퀴 둘러본다. 징검다리를 사뿐사뿐 다시 건너보는데 간질간질한 햇살이 에 반짝반짝 일렁인다. 두 뺨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다 돼서 다시 공양간으로 향했다. 점심공양에는 호박전에 잡채에 파인애플까지 나왔다. 마지막 공양이라 그런지 잡채도 맛있고 파인애플도 정말 맛있다.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개고 옷도 정리해서 가져다주고 절을 나선다. 절에서 먹고, 자고, 쉬면서 말 그대로 절에 머물다가만 온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 와서 남들이 다 한다는 그 흔한 명상도 안 하고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있다 나오려니 이래도 되나 싶은 게 지 모를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아쉬움과 찜찜한 마음뒤로한 채, 우린 속세를 향해 달려간다. 가는 길에 어젯밤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과자를 한아름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속세를 떠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과자부터 찾다니... 이건 또 뭐니? 이런 내가 참 부끄럽다고 느끼면서도  많은 과자들 중 뭘 먹을까 고민하다 카라멜콘과 땅콩 한 봉지를 먹으며 침대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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