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셜리 Aug 21. 2020

왕이 왕비에게 선물한 마을 오비두스에서의 낮술 투어

episode- 2020. 1. 22.  포르투갈 오비두스

이 여행기는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어제 호카곶에 갔다 온 후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어서 아침에 못 일어날 줄 알았더니 말도 안 되게도 6시가 넘으니 눈이 딱! 떠졌다. 몸은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 일찍 일어난 게 너무 억울해서 억지스레 눈을 감고 침대에서 계속 뒹굴거리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8시쯤 내려가 여유롭게 또 많이 많이  조식을 먹었다.

호텔 프런트에 오비두스에 가는 방법을 물어본 다음 그녀의 설명대로 메트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오비두스행 버스를 타러 갔다. 티켓은 직접 기사님께 사면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버스 타는 곳을 못 찾겠다. 어디에도 오비두스행 표시가 없어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가 작은 매표소가 있길래 직원한테 물어보니 오비두스행 버스는 여기가 아니라 길 건너편에 있는 초록색 건물 앞에서 타면 된단다. 정류장에 쓰여있는 출발시간을 보니 아직 30분이 넘게 남았다. 친구가 화장실에 가고 싶대서 전혀 급하진 않지만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덩달아 따라가서 50센트를 주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1시간쯤 달려, 너무 아름다워서 왕이 왕비에게 선물했다는 작은 마을 오비두스에 도착했다. 일기 예보상 흐리고 비가 온대서 걱정했는데 흐리긴 해도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얗고 파란 벽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게들이 보인다. 딱 내 스타일이다. 스페인의 프리힐리아나 느낌? 진짜 왕이 왕비에게 선물할만하다. 얼마나 사랑하면 마을 하나를 통째로 선물할 수 있을까? 그 왕비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오비두스가 예쁘기도 하지만 내가 오비두스에 오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얼마 전에 배틀 트립을 얼핏 봤는데 이설과 이엘이 오비두스 골목에서 진자라는 술을 마시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진자를 마셔보고 싶었다. 진자는 체리와 설탕으로 만든 술인데 생각보다 도수가 높아서(20도 이상) 초콜릿으로 만든 잔에 따라 안주로 초콜릿을 먹는단다. 그리고 골목의 가게마다 진자의 맛이 다 다르단다. 과연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진자 가게가 보인다. 초콜릿 잔에 빨간 진자를 따라주는데 딱 한 입에 털어 넣을 수 있는 양이다. 독주인데도 달콤하니 맛있다. 마시고 난 다음에 초콜릿 잔을 안주로 먹는데 그 궁합이 너무 잘 맞는다. 마치 선운사에서 먹은 복분자와 장어처럼 끝도 없이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 맛있어! 게다가 한 잔에 1유로밖에 안 하니 안 마실 이유가 없다. 몇 발짝 안 가면 또 그 맛있는 진자를 파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여기저기 다니며 4잔을 마셨는데도 전혀 취하지 않는다. 이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마음은 이 골목 안의 진자를 다 마셔보고 싶었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갈 생각에 가까스로 참았다.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고 버스를 타러 가려니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늘 타이밍이 참 좋다.


리스본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날씨가 쌀쌀해져서 숙소에 가서 좀 쉬었다가 경량 패딩을 안에 더 챙겨 입고 숙소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동네 공원이라기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큰 동상도 있고 예사 공원은 아닌 것 같아서 찾아보니 에두아르두 7세 공원이란다. 스케일이 정말 크다. 공원 안에 난 길에 차가 다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길도 넓다.

저녁 메뉴는 고민하다 어제 갔던 한식당 케이밥 2호점이 근처에 있다길래 가서 비빔밥, 비빔국수, 라면정식(공깃밥 포함)까지 둘이 3인분을 시켜서 맛있게 배 터지게 먹고 왔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어마어마하게 큰 백화점을 발견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순 없듯이 포르투갈이라고 해도 우리의 쇼핑욕은 1도 줄어들지 않았다. 백화점 안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었는데 층마다 그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매장도 엄청 많았다. 옷도 걸쳐보고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이미 포화상태인 캐리어를 생각하니 안에 들어갈지 걱정부터 돼서 섣불리 사지는 못 했다. 백화점을 나와  동네 산책을 마치고 그저께 사다 놓고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못 마신 슈퍼복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진자로 낮술! 맥주로 밤술!

그리고 진짜 억울하게도 이렇게 열심히 걷고 몸은 힘든데 살은 계속 찐다~~~ 술 때문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