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삶의 낙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들 그냥 살듯이 나도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출근은 싫었다.
생각해보니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코로나가 우리 삶을 꽁꽁 묶어놓은 지 어느덧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TV에서는 매번 이번 주말이 최대 고비라며 집에 머물러 달라, 외부 활동을 자제해 달라.... 나처럼 걱정이 많고 소심한 사람들은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번 시키는 대로 사람도 잘 안 만나고, 사람 많은 곳은 자제하며, 흔한 맥줏집 한 번을 안 갔다. 그렇게 모든 것들을 코로나 이후로 미루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방역수칙을 잘 지킨 나만 바보가 된 듯해 억울하기도 했다.
친한 사람들도 자주 못 만나고, 여행도 못 가고, 야구장도 못 가고, 좋아하는 꽃놀이도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는 게 다 시들해졌다. 재미가 없었다. 꽃을 봐도 예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식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번 각원사를 마지막으로 올해 벚꽃은 진짜 진짜 끝이라고, 개심사까지는 정~말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데는 개심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게 제일 컸다. 그리고 실제로 몇 년 전에는 개심사를 코앞에 두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나온 적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꽃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몇 시간씩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요즘처럼 모든 게 시들할 땐 그런 수고로움을 이겨낼 만큼의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젯밤 계속 개심사 겹벚꽃이 떠올랐다. 문수사의 분홍 왕벚꽃터널이 눈에 밟혔다. 에이~! 그래도 못 간다~~~ 그 새벽에 갔다가 또 못 들어가면 어쩔건데! 몰라~~~ 안 가! 아니 못 가!~
그렇게 안 간다. 못 간다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6시 귀신같이 잠이 깼다. 하.... 안 간댔잖아~~~! 그래 놓고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데... ㅠㅠ 일찍 일어났으니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어쩔 수 없네. 그래! 가자~! 가야지 뭐~!
어쩜 어젯밤에 나의 무의식은 이미 가겠다고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의식이 새벽 6시에 잠을 깨우고 날 일으켰나 보다. 그런가 보다...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씻고, 국에 밥을 후루룩 말아먹고 또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지난번 새벽에 갈 땐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운전을 했었는데, 다행히 안개도 없고 날씨도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히 좋았다.
대전-당진 도속도로를 달려 면천 IC로 빠졌다. 서산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팝콘 같은 왕벚꽃이 보인다. 개심사가 가까워지자 초록초록 목초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만 보면 좀 과장을 보태서 스위스 어디라고 해도 믿을 것같았다. 서산 한우목장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여러 번 와도 소가 나와있는 건 거의 보질 못했다. 어쨌든 눈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다행히 여기까지는 차가 안 막힌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8시 30분쯤 개심사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차들이 줄을 서 있다. 돌아 나오는 차들이 있는 걸 보니 주차장이 만차인가 보다. 마음은 불안하지만 일단 들어가서 자리가 나길 기다려보기로 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빈자리가 없다. 어쩌지?... 하는 그 순간 운명처럼 내 앞에서 차가 한 대 쏘~옥 빠져나간다. 와우~ 감사합니다... ㅠㅠ
절까지 가는 길을 막아놔서 걸어서 올라갔다. 온통 초록 아니면 분홍색이다. 분홍색 겹벚꽃이 여기저기 팡팡 피어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 예뻤다. 절정을 맞은 부케 다발 같은 꽃송이들이 눈이 부셨다. 정말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진짜 찐으로 미쳤다~~~! 몽글몽글 피어난 꽃송이들을 올려다보느라 고개가 아플 지경이었다. 진짜 봐도 봐도 예쁘고 또 예쁘다. 맞아~! 바로 이 느낌이지! 꽃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그대로였다. 꽃으로 완전한 힐링~ 지금 이 순간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온전히 꽃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보고 또 보고... 감탄하고 또 감탄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두고 오기가 너무너무 아까워서 자꾸자꾸 뒤돌아 보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문수사로 향했다. 문수사로 들어가는 길도 역시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전에 없던 임시주차장이 생겼으나 역시나 만차. 일단 원래 주차장 자리까지 들어갔다. 만차다. 어쩌지? 하는 순간 또 거짓말처럼 자리가 났다. 이런 행운은 뭐지?~~~
문수사는 올라가는 길이 분홍색 겹벚꽃으로 터널을 이루는데 절정을 막 지난 느낌이었다. 그래도 꽃이 만들어주는 터널을 걷는 느낌은 말도 못 하게 행복하다.
새벽 6시에 잠을 깨운 것도,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게 해 준 것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주차 자리를 만들어 준 것도 왠지 꽃들이 날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울했던 날 위로라도 해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난 그렇게 믿으련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