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 와서 알람 없이 일어나는 여유로움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몇 번 뒤척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늦게까지 잠을 잤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눈을 뜨니 아침 9시. 우리가 묵는 집이 마당도 넓은 데다 포토존도 있고 간식을 파는 가게까지 있으니 무섬마을의 핫플레이스다. 은행동으로 치자면 이 안경원 정도? 게다가 연휴라 사람들이 많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낮잠을 자기엔 무리다. 마을 안쪽에 있는 조용한 고택을 숙소로 잡았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하루 종일 시끄러운 건 아니니 그래도 나쁘지 않다.
아침 겸 점심으로 순두부찌개 컵반을 먹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원래 계획은 시골버스를 타고 맘에 드는 마을이 보이면 무작정 내려서 마을투어를 하려고 했으나 막상 타보니 노선이 엄청 복잡하다. 큰길로 가다가 갑자기 좁은 시골길로 들어갔다가 마을 앞에서 차를 돌려 나오기를 수차례. 대체 여기가 어딘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만큼 버스가 시골마을을 구석구석 돌아 나온다. 정류장도 없는 곳이 더 많으니 나중에 버스를 타고 나올 일도 걱정이다. 모르는 내가 보기엔 시골길 아무데서나 타고 내리는 것 같다.
과감히 시골마을투어를 포기하고 종점인 영주여객터미널에 내렸다. 할머니 세 분이 장바구니를 들고 내리시기에 시장에 가시겠구나 싶어서 할머니들을 따라가기로 한다. 할머니께 여쭤보니 역시 시장에 가신단다. 할머니들께서 친절하게 시장을 안내해주셔서 쉽게 시장을 찾았다. 찾고 보니 시장이 꽤 크다. 영주 골목시장, 365시장, 중앙시장 등이 거기 거기에 붙어있다. 소 뒷걸음치다가 얻어걸린 시장투어지만 재미가 쏠쏠하다.
핫도그, 랜떡, 닭강정, 영주에서 제일 맛있다는 김가오가네 김밥을 입에 넣고 또 등에 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무섬마을로 돌아가는 길. 가는 길 역시 쉽지 않다. 좁은 시골길을 돌고 돌아가는 길. 깜빡 졸았나 싶은 순간 버스에 타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어이~! 어이~! 오른쪽!!" 이러신다.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셨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세상에~! 버스 기사님께서 노선을 이탈하신 거였다. 오른쪽 샛길로 빠졌어야 하는데 깜빡하고 지나치신 것.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버스가 10m쯤 후진을 해서 다시 구불구불 시골길을 돌고 돌아 무섬마을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골버스 기사님은 극한직업 같다. 세상에 이렇게 복잡한 버스노선은 없을듯하다.
숙소에 돌아와 책을 펴고 눕는다. 책을 보겠다는 건지 잠을 자겠다는 건지 의도가 불분명하지만 난 분명 책부터 폈다. 한참을 뒹굴거리다 시장에서 사 온 영주에서 제일 맛있다는 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BGM 삼아 노래를 들으니 분위기 정말 완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