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버스 탈 때 한 번, 터키 가는 비행기에서 한 번, 터키에서 스페인 갈 때 또 한 번!
아... 지긋지긋한 멀미! 멀미! 멀미...
온갖 멀미에, 불면증에, 저질체력에, 겁까지 많은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여행 체질은 아닌 것 같다. 근데 잠을 그렇게 못 자고도 아름다운 풍경만 보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걸 보면 어쩌면 나에겐 여행이 숙명인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스페인 여행도 나에겐 숙명이자 운명일지도 모른다. 뭐 전에도 여행을 미리미리 계획해서 갔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이번 스페인도 친구와시간만 맞춰보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얼떨결에 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사실 설렘 보단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전 세계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에,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에,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비행기 추락사건까지...소심하고 겁 많은 나로선 이걸 가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더 컸던 것이다.
인천공항까지 3시간, 비행시간만 16시간, 환승 대기시간5시간까지 더하면 꼬박 하루가 걸려 스페인에 도착했다. 그 좁은 비행기 안에서 허리 한 번 쭉 펴지 못하고 감금당한 채 4시간마다 한 번씩 주는 기내식을 세 번이나 꾸역꾸역 받아먹으며 버텨온 16시간이었다. 머리는 떡지고 얼굴의 화장은 개기름으로 다 지워지고 다크서클까지 내려앉은 몰골은 내가 봐도 못 봐줄 지경이었다. 공항패션이라면서 뽀샤시한 얼굴로 입국하는 연예인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인정~!
그런데 오늘 정말 이상한 일이 있었다. 터키 공항에 착륙하기 20분쯤 전에 우리 비행기 주변에 2~3대의 비행기 불빛이 수분 동안 따라다닌 것이다. '우리 비행기의 불빛을 착각한 걸까?' 그러나 아무리 봐도 불빛의 위치상 우리 비행기는 아닌 것 같았다. 얼핏 봐도 큰 비행기는 아닌 것같고 그렇다고 전투기나 UFO도 아닌 것 같고,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은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IS무장단체의 비행기 납치? 비행기 격추? 몇 분 동안을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기도했고, 어느 순간 불빛들은 사라졌다.그 불빛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전~혀! 스페인스럽지 않은 말라가 공항에 도착했다.
일단 호텔을 찾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버스정류장으로 갔다.버스 티켓을 어디서 사야 할지 몰라 물어보니 버스기사님한테 직접 구입해도 된단다. 물어 물어 버스를 타고 호텔 근처 정류장까지는 다행히 제대로 내렸다. 그다음, 호텔이 표시된 지도를 펴서 물어보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영어를 거의 못 하기 때문에 묻는 나도 알려주는 사람도 서로 답답하기만 했지만 끝까지 알려주시려는 따뜻한 마음이 통한 건지 대충 감으로 알아듣고 한 번에 잘 찾아갔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떡진 머리부터 해결하고 다 지워져 얼마 남아있지 않은 화장을 지웠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일단 말라가 터미널에 가서 내일 탈 버스시간표를 확인하고 말라가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원래는 피카소 미술관에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말라가 대성당에 가기로 했다.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찾은 성당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이었다.성당에 가니 신자는 아니어도 기도해 줄 사람은 참~ 많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마치고 성당 바로 옆 노천카페에서 빠에야를 먹었다. 나도 참 잘 먹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 대식가인가 보다. 빠에야 2인분이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화수분 같았다.우리가 시킨 해산물 빠에야는 뭔가 질척거리고 바다의 짠맛이 강했다. 윙크까지 날려주며 서빙을 해준 잘생긴 청년에게는 미안했지만 빠에야를 반이상 남겨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한국의 스페인 식당에서 먹어본 빠에야가 내 입맛에는 더 맞다. 촌스럽게도.
저녁을 먹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말라가 시내를 여유롭게 걷다 보니 비록 몸고생, 맘고생은 좀 했지만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