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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Jan 12. 2022

멀미와 함께 한 덕유산 눈꽃 산행

황홀한 눈꽃 산행

지난주 <나 혼자 산다>에 전현무가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라산에 올라가는 내내 펼쳐지는 하얀 눈꽃이 너~~~무 예뻐서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나도 눈꽃을 보고싶다~~~'를 계속 되뇌며 그렇게 잠이 들었었다.


물론 전현무가 7시간에 걸쳐 백록담에 오르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고 눈동자가 풀린 그의 얼굴은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이미 나는 한라산엔 절대! 못 간다고 칼같이 결론을 내렸었다.


그렇지만 눈꽃은 꼭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너무 멀지 않고, 눈꽃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으며, 내 저질체력으로도 등반이 가능한 곳! 그곳은 바로 덕유산 향적봉이다. 그러나 아무리 향적봉이어도 날마다 눈꽃을 볼 수는 없으니, 그날부터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저녁, 무주의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니 새벽에 눈이 올 확률이 60%란다. 음... 60%란 말이지.


일단 네이버에서 곤돌라 티켓을 예매하고, 간간이 설천봉 실시간 cctv를 확인하다 잠이 들었다. 국립공원 곳곳에 있는 cctv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내가 생각해도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집요하다기 보단 걱정이 많은 성격 탓일 거다. 보고 싶은 눈꽃을 못 볼까봐...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설천봉 cctv를 확인했다. 내 바람대로 다행히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눈이 쌓여있었다. 바람은 조금 부는 듯했지만 하늘도 맑고, 눈도 그쳐있었다. 눈꽃 보기 딱 좋은 날씨다.


위아래로 옷을 겹겹이 챙겨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고속도로를 타고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무주리조트에 도착했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에서 티켓을 발권해서 곤돌라에 올랐다.


융통성 없는 직원은 사람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닌데, 다른 일행까지 탑승정원 8명을 꾸역꾸역 채워서 태운다. 곤돌라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해오고, 속이 미세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아...! 멀미가 시작된 거다. 눈꽃을 보겠다는 설렘에다 곤돌라를 너무 오랜만에 타다 보니 내가 곤돌라 멀미를 한다는 걸 까먹은 거다. 사실 난 비행기, 배, 기차, 버스, 놀이기구, 곤돌라까지 모든 탈 것에 멀미를 한다. 그래서 특히 해외여행이라도 갈 때면 항상 제일 먼저 멀미약을 준비해야 했다. 물약, 알약, 가루약, 씹어 먹는 멀미약까지...


그랬던 내가 곤돌라 멀미를 까맣게 잊은 거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미리 알았더라도 방법이 없긴 했을 건 같긴 하다. 내가 운전을 해야 했으니 멀미약을 먹기도 걱정이 되긴 했을 거다.


암튼 속이 울렁거리니 고개도 돌리기 힘들어서 창밖에 펼쳐진 눈꽃 세상을 쳐다볼 겨를도 없다. 빨리 설천봉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더디기만 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고 드디어 설천봉에 도착했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곤돌라에서 내렸는데, 내 상태와는 상관없이 온통 새하얀 세상이 펼쳐졌다. 여전히 속은 울렁거렸지만, 아름다운 설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와~~~~ 예쁘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상제루에 가서 아이젠을 빌려 신발에 끼우고 장갑에 모자까지 푹 뒤집어썼다.

준비 완료! 이제 오르기만 하면 된다. 심호흡을 하고 향적봉에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계단으로 이어진 눈꽃 터널을 황홀함에 취해 오른다. 그러나 향적봉까지 20~30분밖에 안 걸린다는 길, 아기들도 오를 수 있다는 쉬운 길, 등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하다는 이 길이 내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멀미 기운이 남아서겠지.

그래도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하얀 눈꽃 터널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고, 구름인 듯 눈꽃인 듯 온통 새하얀 세상은 마치 선계에 오른 느낌이었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이 기분을 표현할 딱 맞는 말을 찾긴 어렵지만 그중 가장 근접한 말은 아마도 황홀함일 것 같다.


황홀한 눈꽃 산행을 마치고 나니 한숨부터 나온다. 곤돌라를 또 어떻게 타지? 다행히 내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바로 곤돌라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멀미는 더 심해졌다. 명치끝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간다. 등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조금만 방심해도 토할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참는 수밖에... 사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높은 곳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곤돌라를 타면서 멀미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이 고통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다행히 무사히 아래까지 잘 내려왔다. 내리자마자 토할 것 같았지만, 벤치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 난 괜찮다. 난 토하지 않는다.' 이렇게...


멀미와 함께 한 나의 눈꽃 산행. 멀미만 아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겠지만 고통이 있었기에 눈꽃은 더 황홀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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