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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Oct 15. 2024

시드니에서 낯선 남자와 사진 한 컷

가끔은 이상해져도 괜찮아!

2024년 1월 19일 금요일   시드니


시드니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패디스 마켓부터 가려고 했는데, 10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동선은 좀 꼬이지만 달링하버 근처의 달링스퀘어 도서관에 가보기로 했다. 나선형의 외관이 특이해서 유명한 곳이었는데 안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잠깐 둘러봤지만, 달링하버는 그동안의 호주 다른 도시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진짜 도시 같은 느낌이랄까? 뭔가 세련된 느낌이었다.

10시가 다 되어 패디스 마켓으로 향했다. 어제 빅토리아 마켓에서 이미 쇼핑을 많이 했던 터라 마음이 크게 동하지는 않았다. 패디스 마켓은 실내에 있는 약간 저렴이 버전의 쇼핑몰(?)느낌인데, 사실 쇼핑몰이라 부르기에는 뭔가 허접하고, 실내에 있는 시장 느낌이다. 가게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체계적인 쇼핑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또 다시 쇼핑에 빠졌다. 다시는 이곳에 못 온다는 생각이 자꾸 지갑을 열게 했다. 가게가 다 비슷비슷해서 한 번 왔던 곳을 몇 번씩 다시 왔다 갔다 하며,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는 와중에도 나의 쇼핑은 계속 됐다.

한바탕 쇼핑 후에 버스를 타고 시드니대학교로 갔다. 시드니대학교는 1850년에 세워진 호주 최초의 대학교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 10위 안에 드는 곳이라고 한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와 닮은 아름다운 교정이 SNS에 인생샷 핫플로 입소문이 나면서 해리포터 포토존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학교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다 보면 해리포터에 나올법한 건물이 보이고 회랑 같은 곳에 아치가 연달아 있는데, 거기가 바로 해리포터 포토존이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고 있으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우리도 포토존에 앉아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본다. 여전히 어색하다. 우리의 사진은 항상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고 배경이 주인공이었으니 인증샷을 찍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중요한 건 우리가 시드니대학교에 왔었다는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이다.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 한참을 걷다가 보타닉 가든을 가로질러 시드니의 상징인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보타닉 가든이 워낙 넓다 보니 가로질러 가는 동안 힘이 빠졌다.


진이 빠진 채로 마주한 오페라 하우스는 생각만큼 감탄사가 나오진 않았다. 너무 환한 대낮이라 그런지 오페라 하우스의 하얀 지붕이 너무 매끈하고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기대를 한 건지 큰 감흥은 없었지만 시드니에 와 있음이 아주 강렬하게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온 또 한 가지 이유인 오페라바! 오페라 하우스 아래쪽으로 쭉 이어지는 오페라바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았다. 간단하게 피자와 콜라를 주문했다. 가격은 예상대로 사악했지만 이곳에서 마주하는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는 나를 들뜨게 하기엔 하기엔 충분했다. 점심값에 이 아름다운 풍경값이 포함된 거라면 충분히 지불할 마음이 있다. 블로그에서 봤던 대로 갈매기들이 호시탐탐 사람들의 음식을 노렸으나 다행히 우리 피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증샷까지 찍은 후, 다시 보타닉 가든으로 돌아가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역시나 사람들은 나무 그늘마다 얇은 담요 한 장을 깔고 누워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보타닉 가든 안쪽으로 쭉 걸어서  미세스 맥콰이어 포인트로 향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오페라하우스는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포인트라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앉을 자리를 찾는데, 오페라하우스가 정면으로 보이는 벤치에 어떤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너무 여유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문득 나도 그의 옆에서 액자 안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뭐 다른 뜻은 없었다.


조력자인 친구와 함께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옆에 앉아도 되겠느냐 묻고(마침 다른 벤치는 빈자리가 없었다), 그의 옆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리고 내 친구는 자연스럽게 뒤로 가서 우리의 뒷모습을 찍어주었다. 아니! 친구는 내 뒷모습을 찍어주는것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안다면 혹시 기분이 나쁠까? 실례일 수도 있으니 아무도 모르게 아주 조용히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뭐 나쁜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뒷모습이니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서 말이다.


나중에 사진을 확인해 보니 일부러 맞춘 것처럼 발도 같은 방향으로 꼬고 앉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둘이 아는 사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너무 구차한가 싶었지만, 이 또한 여행의 한 장면이  것이고, 한번쯤은 미친짓을 해도 되지 않을까?


노을이 질 무렵의 오페라하우스를 보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여름이라 해가 늦게 지니 기다리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렸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미세스 맥콰이어 포인트로 몰려들고 있었고, 나와 친구는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가며 그 사람들을 지나쳐 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습관처럼 한인마트에 들렀다. 너무 힘들어 입맛이 없다며 저녁도 못 먹겠다면서도 컵라면이랑  한 줄에 8달러나 하는 비싼 김밥을 샀다. 역시나 입맛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었고, 우린 컵라면과 김밥을 하나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었다.

휴대폰을 보니 오늘 하루 동안 무려 21,883보를 걸었다. 

어플의 멘트처럼 또 하나의 한계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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