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로 넘어가야 하는 일정이라 어젯밤에 미리 짐을 다 싸 놓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조식까지 든든히 먹었다. 멜버른 시내는 둘러봤고, 어딜 갈까 하다가 기념품 쇼핑이나 해볼까 하고 퀸 빅토리아 마켓으로 향했다. 전혀 몰랐는데 구글지도를 따라 가다보니 호텔 바로 뒷편에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날마다 가봤을텐데... 이걸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누굴 탓하겠는가. 미리 검색해 보지 않은 게으른 나를 탓해야지.
아직 9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건져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여기 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에코백이며 장바구니, 코알라와 캥거루 인형, 마그네틱, 티셔츠 등등 살 것이 넘쳐났다. 시드니에 있는 패디스 마켓이 더 싸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나의 불타는 쇼핑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예쁜 에코백이 어찌나 많은지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 중 엄선한 몇 가지만 일단 샀다.
오후에 공항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해서 호텔로 돌아가 미리 체크아웃을 마치고, 짐을 맡긴 뒤 다시 돌아와 쇼핑에 몰두했다. 돈을 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호주에서의 그 어떤 순간보다 즐거웠다. 나중에 시드니 패디스 마켓에도 가봤지만, 개인적으로 퀸 빅토리아 마켓이 나랑 더 잘 맞았다.
원래는 점심을 먹으러 소사이어티라는 유명한 식당에 가려 했으나, 쇼핑에 시간을 너무 쓴 탓에 결국 가지 못했다. 퀸 빅토리아 마켓이 시장이다 보니 과일이며 생과일 주스도 팔고 있었고, 푸드 트럭도 있었다. 호주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 싶지만, 오코노미야끼와 네팔식 치킨 라이스를 먹었는데, 둘 다 맛이 독특했다.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푸드 트럭 도넛도 줄을 서서 먹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맛은 아니었다. 우리 동네 찹쌀도너츠가 내 입맛엔 더 맛있었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해결됐으니 됐다.
호텔에 맡긴 짐을 찾아서 스카이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1시간 30분의 짧은 국내선 비행이었지만, 무려 와인도 제공된다.콴타스 항공을 이용했는데, 호주 항공사가 출발 지연은 많지만, 먹을 것 인심은 후한 것 같다. 오지 파이와 와인 덕분에 오랜만에 기분 좋은 비행이었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트램을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룸으로 올라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또 더블 베드가 준비되어 있다. 리셉션에 다시 내려가서 트윈 베드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더니, 아주 도도한 표정으로 트윈 베드는 안 되고, 킹 베드로 업그레이드만 가능하단다. 단, 하루에 10달러씩 더 내면 트윈 베드를 제공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우리가 이 호텔에서 무려 5박을 하는데 그 정도 편의도 못 봐주냐고 말해봤지만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아주 단호하다. 옆에 있는 다른 직원들은 다 인상이 좋아보인다. 만약 우리가 다른 직원을 만났더라면 달라졌을까? 결국 우린 50달러를 더 내기로 하고, 트윈 베드로 바꿨다.
호텔이 차이나타운 근처라 그런지 식당도 많고, 상점도 많다. 짐을 대충 풀고 한인 마트에 가서 물이랑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왔다. 그런데 방에 돌아와 보니 옆방에서 젊은 여자들의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난다. 아니 방음이 안 되는건지, 그녀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인지...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지만 이건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은 채로 시끄럽게 떠들고, 침대위에서 뛰면서 춤을 추는 건지 뭘 하는건지. 50달러 더 내라고 해서 안 그래도 이 호텔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층간 소음도 아니고 벽간 소음이라니... 화가 나서 리셉션에 인터폰을 했다. 얼마 뒤 옆방 초인종 소리가 들려 문구멍으로 내다 보니 검은 양복에 덩치가 좋은 남자 가드가 올라와서 옆방에 뭐라고 뭐라고 얘기를 하고, 혹시 또 떠들진 않을까 싶었는지 한동안 문 앞에 지키고 섰다가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