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출발 전 간단하게 조식을 먹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급해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집합 장소까지 헐레벌떡 걸어갔다. 도착한 시간은 7시 50분, 우리와 비슷하게 잠이 덜깬 표정을 한 다른 여행객들이 모여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링컨스락. SNS에서 유명한 낭떠러지샷 바로 그곳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 사진에 혹해서 투어를 결정한 건지도 모른다. 높은 산이라고 해도 차로 끝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등산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더 혹했을 거다. 날씨가 흐려서 산이 안 보일까 걱정을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날씨가 점점 개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의 모습이 놀라웠다.
그러나 그 감동도 잠시, 인증샷을 찍을 시간이 다가왔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인증샷을 찍을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나는 못 찍을 거라 생각하고 올라오긴 했다. 가이드님이 지금까지 여기에서 사진 찍다가 사고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초등학생들도 다 찍었다며 절~~~대 겁먹을 필요 없다며 본인만 믿으라신다.
베테랑 가이드님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먼저 시범을 보이시고 한 사람씩 줄을 서서 인증샷을 찍는다.
생각보다 다들 용감하신 건지 소리 한 번 지르는 사람 없이 순조롭게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생 아이도 사진을 찍었다. 이제 거의 마지막 차례. 일단 줄은 섰는데 내가 진짜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쩌지? 못 찍겠다고 할까? 무서워서 못 찍겠다고 하니까 가이드님과 같이 온 여행객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안 무섭다며 찍을 수 있다고 일단 가보란다.
고민하다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남들은 두 발로 걸어서 가는 곳을 나는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갔다. 발밑으로 아찔하게 떨어지는 낭떠러지를 보니 온몸이 얼어붙었다. 결국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끝까지 다리를 내밀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는데, 가이드님은 너무 잘하고 있다며 계속 응원을 해주셨다. 빛의 속도로 인증샷을 찍고 나서는 어기적 어기적 엉덩이를 뒤로 밀면서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생존이 최우선이었다.
'아! 살았다~!' 하는 안도감과 함께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하고 기특했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다음 코스인세 자매봉에 도착했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건 혹시 도담삼봉인가?' 싶기도 했고, 중국 장가계의 일부분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가이드가 설명해 준 세 자매봉 전설을 들으며 여기가 한국인지 호주인지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물론 사이즈가 한참 다르긴 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사진 몇 장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날씨가 아주 맑지는 않아서 더 그럴 수 있다.
다음 코스는 시닉월드. 우리가 제대로 안 알아봐서 일수도 있지만, 시닉월드에 별 관심이 없어서 따로 신청을 안 했다. 우리 말고도 신청 안 한 팀이 더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다른 여행객들이 체험을 마치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산책이라도 할까 해서 주변을 둘러봤으나 딱히 볼만한 곳은 없었다. 가이드님 말로는 1시간이면 된다고 했는데,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서인지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
이번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페더데일 동물원에 도착했다. 동물원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원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규모가 조금 큰 동물농장에 가깝다. 동물원이라 하기엔 규모도 작고, 동물의 종류도 많지 않다. 장점이라면 동물들을 가까이 볼 수 있고, 먹이 주기 체험이 가능하다 정도? 어린아이와 함께라면 와볼 만 하지만 우리 같은 어른들에겐 다소 실망감을 줄 수 있다.
그래도 왈라비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아기 캥거루처럼 작은 왈라비가 내 앞에 다가와 내 손에 있는 먹이를 핥아먹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관광객이 준 먹이를 먹어서 그런지 배부른 왈라비들은 먹이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더위에 지친 코알라도 늘어져서 잠에 취해 있었다. 이미 며칠 전에 커럼빈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다녀와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다.
투어가 끝나고 시드니로 돌아와 서큘러키역에 도착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다시 보니 어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서큘러키에 온 목적은 페리를 타고 달링하버에 가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이다. 투어가 늦게 끝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여유 있게 페리를 탈 수 있었다.
달링하버로 가는 페리 선착장을 몰라서 한참 헤맸지만, 직원에게 물어물어 어렵사리 달링하버로 가는 페리를 탔다. 페리를 타고 멀리서 바라보는 오페라하우스는 가까이서 볼 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달링하버에 도착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달링하버에 쭉 늘어선 레스토랑과 바는 흥겨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거리엔 어깨를 드러낸 채 드레스업한 사람들이 넘쳐났고, 토요일밤이라 그런지 다들 한껏 들떠있는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긴 해야겠는데 우리만 너무 캐주얼한 복장이라 들어가는 것이 어딘가 어색했다. 골드코스트 이후로 또다시 너무 많이 입어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복장에 맞게 맥도날드를 찾아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때 지나가던 남자 둘이 불쑥 다가와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얼떨결에 그러라고 하고 폰을 넘겨주긴 했지만, 속으론 이대로 폰을 들고 튀면 어쩌나 하며 사실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물론 유럽에서라면 절대 폰을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이 우리나라만큼 치안이 좋은 호주이다 보니 폰을 안 주면 너무 쿨하지 않아 보일까 봐... 그래서 쿨한 척 폰을 준 것이다.
그들은 우리 사진을 몇 장 찍어주더니 즐거운 여행 하라며 쿨하게 떠나갔다. 찍힌 사진엔 어딘가 흐릿한 우리의 모습과 그들의 셀카가 뒤섞여 있었다. 사진은 엄청 흔들려 있었고, 다시 보니 그들의 얼굴이 벌겋다. 만취 상태에서 보인 객기였나 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어이없는 상황에 자꾸자꾸 웃음이 났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밤이었다.
마지막으로, 9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포인트를 찾아 헤맸다. 블로그를 찾아봐도 정확하게 어디가 불꽃놀이 포인트인지 자세히 나와있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불꽃놀이 시작 10분 전인 8시 50분, 우리는 우연히 사람들 무리에 합류해 떠밀리듯 다리 위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을 배경으로 터지는 화려한 불꽃은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릴 만큼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귀갓길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까지 10분을 걸었으나 버스는 30분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결국, 우린 우버를 불러 호텔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만은 뿌듯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