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걸이가 어떤 귀걸이냐면. 며칠 전에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브리즈번 공항에서 내렸을 때, 귀 한쪽이 이상하게 허전해서 만져보니 귀걸이가 없었다. 원터치 귀걸이라 평소에 빼는 일도 없고 잃어버릴 일도 없는 귀걸인데 그 귀걸이가 없어진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있었으니까 비행기 안에서 잃어버렸든지 아니면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어딘가에 걸려서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나름 애착 귀걸이라서 속상했지만 무려 싱가포르에서 브리즈번 공항까지, 물리적으로 찾을 수 있는 동선이 아니라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걸이가 한참을 지나서 시드니 호텔 침대 위에서 발견됐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기분이 너~~~ 무 좋다. 차분히 생각해 보니, 내가 싱가포르에서 브리즈번으로 올 때 비행기 안에서 걸쳤던 가디건이 있었는데, 가디건을 입고 벗다가 가디건 어딘가에 간당간당 걸려 있던 것을 오늘 아침에 옷을 정리하면서 떨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 사건을 시드니의 작은 기적이라 명명했다.
흥분된 마음으로 찾은 첫 번째 목적지는 왓슨스베이와 갭파크이다. 어제처럼 써큘러키 선착장에서 왓슨스베이(Watsons Bay)로 향하는 페리를 탔다. 날씨가 흐려서 조금 아쉬웠지만 페리에서 바라본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는 다시 봐도 멋졌다.
왓슨스베이는아담한해변이 공원과 이어져 있어서 굉장히 한적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뷰가 예쁜 벤치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피크닉을 꼭 해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서는 피시앤칩스를 먹어줘야 한다. 근처 식당에서 피시앤칩스를 테이크아웃해서 오션뷰 벤치에 앉아 풍경에 감탄하며 소풍을 즐겼다. 날씨가 흐려 예쁜 모습을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갈매기 떼가 우리를 포위했다. 비둘기 떼는 많이 봤어도 갈매기 떼라니... 갈매기들이호시탐탐 도시락을 노리긴 했지만 양심은 있는지 대담하게 낚아채 가지는 않았다. 훔쳐가지 않은 게 기특해서 남은 음식을 잘라서 던져주었다. 흔치 않은 경험이라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왓슨스 베이에서 공원 뒤쪽으로 도로를 건너면 바로 갭 파크에 도착한다. 바다 절벽 위에서 보는 경치는 압도적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파도가 부딪치는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루 종일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는데, 버스를 타고 본다이 비치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기적처럼 맑아졌다. 먹구름이 천천히 흰 구름으로 바뀌더니,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변에선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본다이 비치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그 유명한 아이스버그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이긴 하지만 바다랑 맞닿아 있다 보니 파도가 넘쳐 진짜 바다와 다를 바가 없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있는 레일 위로 사람들이 수영을 즐긴다. 수영을 못하는 우린 그 멋진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만 보았다.
하늘이 완전히 맑아졌기에, 아까 아쉬움이 남았던 왓슨스 베이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니 다시 날씨가 흐려졌다. 치킨도 아닌데 하늘이 완전 반반이다. 우리 반대쪽은 파랗고, 바다 쪽은 여전히 흐린 독특한 풍경이 펼쳐졌다.내가 원하는 맑고 예쁜 풍경은 결국 사진에 담지 못했다.
몸은 피곤하지만 시드니 천문대에 가서 노을을 보기로 했다.구글지도에서 324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해서 버스에 탔는데 몇 정거장 안 가서 다 내리란다. 말도 안 되지만 여기가 종착지란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인지...
다시 급하게 검색을해서 트램과 버스를 갈아타고 천문대에 겨우 도착했는데, 세상에 문이 닫혀 있다. 이쪽 문이 아닌가 보다. 포기하지 않고 블로그와 구글지도를 검색하며 10분 정도 걸어서 시드니 천문대 공원에 도착했다.
다들 블로그를 보고 온 건지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외국인도 있고, 게이로 의심되는 커플도 보이긴 한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한강 공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한국 패키지 여행객들까지 등장해 인증샷을 찍고 갔다. 핫플은 핫플인가 보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으나 날씨가 흐려 노을은 보지 못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차이나타운에 있는 약국에 포포크림을 사러 가는 길에 시간이 되면 가볼까 했던빅토리아 빌딩과 세인트 메리 대성당을 발견했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다.
잠깐이지만 시드니의 유명한 포인트는 다 본 기분이다.
저녁은 가이드님이 추천해 준 스컬피 머피 펍에서 먹기로 했다. 스테이크와 오늘의 스페셜인 치킨까스를 맥주와 함께 주문했다. 펍 안은 너무 시끄러워서 밖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때 지나가던 중국 남자 두 명이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를 중국사람으로 오해하고 뉘앙스 상 같이 술 한 잔 하자 그런 느낌이었다. 우린 중국사람이 아니라고 영어로 대답하자 멋쩍어하며 갔다. 그 남자들이 멋있었다면이야 기분은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괜히 밖에서 먹었다는 후회?
마지막으로 콜스에 들러 망고와 썬크림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특히 망고는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긴 하루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