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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Jan 26. 2016

후쿠기 가로수길에서 춤을...

미친*  DNA

오키나와의 밤 역시 길고 길었다. 이유도 없는 불면의 밤. 여행 와서 기분도 컨디션도 최상인데 왜 잠이 안 오는건지...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마냥 가볍고 또 가볍다.

언제나처럼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오늘도 힘차게 출발! 해볼까?' 했는데 이번엔 사이드 브레이크가 말썽이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사이에 두고 둘아무리 안간힘을 써봐도 꿈쩍도 안 한다. 안전을 위해 사이드 브레이크를 잘 안 풀리게 해 놓은건지, 아님 설마 우리의 힘이 약한건지...

오늘은 또 어떤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펼쳐지려고 아침부터 이런 참신한 이벤트를 준비하셨나 싶다. 한참을 낑낑대다 드디어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렸다! 유후~!! 

이제 정신 차리고 진짜 출발!


오늘은 해변을 따라 세소코비치, 후쿠기 가로수길, 츄라우미수족관, 코우리대교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여전히 좌회전, 우회전이 헷갈리지만 그래도 어제 운전을 좀 해봤다고 오늘은 아주 쪼끔 덜 무섭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끝도 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해변을 따라 세소코비치로 향했다.

그런도착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출입금 표지판이 우릴 막아선다. '태풍도 아닌데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허탈하지만 바닷가 드라이브한 셈 치고 쿨하게 후쿠기 가로수길로 방향을 돌렸다.


한적한 도로를 달려 싱그러운 나무향 가득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차를 하고 보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우중산책이 반가울리 없지만 나름 운치있으리라 위안을 삼으며 우산을 꺼내려고 차 뒷문을 열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차 안으로 쏘~옥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의 차를 무단점거하고도 마치 제 집인냥 태연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여기 고양이들은 붙임성이 좋은건지 얼굴이 두꺼운건지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고양이를 차 안에 두고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안아서 내놓자니 겁이 나고... 진퇴양난이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나오지 않는 녀석을 친구가 용기를 내어 간신히 안아본다. 다행히 반항 한 번 없이 얌전히 품에 안긴다. 가까스로 차 밑에 내려 놓는 데 성공은 했으나 쫓아낸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이어진 가로수길 산책, 아니 탐방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미로처럼 이어진 가로수길을 따라 시골집들이 쏙쏙 숨어있다. 집집마다 지붕 위에, 대문 앞에, 담장 위에 독특한 모양의 시샤가 반갑게 맞아준다. 한적하고 소박한 게 참 좋다. 딱 내 스타일이다.

기분이 좋아지니 또 미친* DNA가 발동한다.  안 되는 사람들을 피해 스카프를 풀어 헤쳐 양손에 들고 가로수길을 미친*처럼 뛰어다닌다. 얼핏 보면 살풀이 같고 다시 보면 망나 같다. 사진을 찍으며 소리없는 웃음이 터지고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 순간은 미친*이래도 좋다~

다음 코스는 오키나와의 필수 코스라는 츄라우미수족관. 사실 남들 다 가는 곳은 나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고 '수족관은 애기들이나 가는거지..' 하고 별 기대없이 찾은 곳이었는데 보는 내내 한시도 눈을 떼지 못 했다. 바보마냥 계속 와~와~감탄사만 연발했다. 특히 어마어마하게 큰 고래상어들은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들을 가까이 두고 보겠다고 작은 수족관에 가둬둔 인간의 이기심이 부끄러워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강추!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점심때가 지났다. 급격한 허기에 식당을 찾기 위해 와이파이를 찾아 헤다 츄라우미수족관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이름도 생소한 삼겹살소바와 타코라이스를 시켰는데 시장이 반찬인지 몰라도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우린 알지 못했다. 우리가 소바란 단어만 들어도 질려할 줄은...

그 다음 코스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촬영지로 유명해진 환상의 드라이브코스인 코우리대교!

소심한 내가 낯선 타국땅에서의 운전을 결심한 이유가 바로 이 코우리대교 때문이라면 말 다 했지. 역시 에메랄드빛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환상적이었다. 적당히 심장이 간질간질한 이 느낌! 아주 완만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이 차가 오픈카였으면..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으나 금세 고개를 젓는다.  오늘은 바람이 너무 불어 안 되겠다. 또 다시 미친* 산발은 싫다.



오늘 저녁은 낮에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컵라면, 각종 과자와 맥주로 정했다. 원래는 일본 편의점 도시락이 맛있대서 도시락을 사먹으려 했지만 냉장되어 있는 도시락이라 뎁혀 먹기가 번거로워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대체한 것이다. 삼각김밥은 맛있었고 컵라면에선 튀김우동 맛이 났다. 칼칼한 김치가 떠오르는 맛이다.

물을 끓이느라 생쇼를 했지만 나름 배부른 저녁을 먹고 있는데 친구한테 카톡이 왔다. 그 친구는 다른 일행들과 오키나와에 와 있는데 공교롭게 오늘 같은 숙소라 맥주 한 잔 하러 오라는 거다. 여자 다섯이 모여 즐거운 수다가 이어진다. 배는 부른데 요놈의 손은 멈추질 않는다. 배가 터질것 같다. 오늘도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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