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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Jan 28. 2016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 되리니...

새벽 6시30분 알람이 울리고 난 자꾸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3일 내내 잠을 못잤더니 피곤해 죽을 것 같지만 오늘은 2시까지 렌트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야해서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커튼을 열어보니 웬일로 해가 반짝 떴다. 오늘이 마지막날이라고 좋은 날씨를 선물해 준건가? 게다가 체크아웃할 때 주차비 500엔도 안 받고 그냥 가란다. 오~~~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이 느낌!!!

햇빛이 나고 바람이 안 부니 따뜻하다 못해 덥기까지하다. 그래! 이래야 진짜 오키나지~

룰루랄라 기분 좋은 출발이다.


오늘은 국제거리와 츠보야 도자기마을을 갈까 고민을 좀 했으나 나하시내가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복잡하다고 해서 일단 한적한 요미탄 도자기마을로 방향을 정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츠보야  도자기마을과 달리 요미탄 도자기마을은 실제로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가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가보니 정말 한적하기가 이를데 없는 곳이었다. 한국인은 한 명도 안 보이고 일본인들만 간간이 눈에 띈다. 공방마다 전시해 놓은 예쁜 도자기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따뜻한 날씨에 꽃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으로 어딜 가야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공항과 가까운 슈리성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오키나와를 관통하여 나하시로 가는데 첫날밤 고속도로와는 달리 운전하기가 너무 쉽다. 그때는 너무 어두워서 무서웠는데 일단 낮이라 주변이 다 보이고 차들도 80km 내외로 천천히 달리니 오히려 내가 과속운전자가 됐다. 차 앞뒤로 붙인 외국인 초보운전 스티커가 무색하다.


그러나 문제는 나하 시내로 진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가뜩이나 차가 많고 길도 복잡한데 내비는 무슨 이윤지 자꾸 좁디 좁은 이상한 골목길로 이끌었다. 과연 이런 곳에 그 큰 슈리성이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미심쩍지만 내비가 안내한 대로 좁은 골목길을 우회전, 좌회전, 좌회전, 우회전,우회전... 끝도 없이 돌고돌아 슈리성 근처까지 왔는데 이런! 가는 길목 한가운데서 하필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을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면 내비는 골목길을 미친듯이 돌고돌아 또 공사하는 그 자리로 데려다 놓고... 몇번을 같은 길을 돌고 도니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완전 멘붕! 짜증이 밀려온다. 꽃할배의 이서진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슈리성 가는 길이 공사하는 그 길밖에 없단 말이냐? 내비년한테 욕을 하고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슈리성을 코 앞에 두고 돌고 돌기를 30여분.. 어찌어찌 하다보니 슈리성이 보인다. 근데 입구가 막혀있다. 이건 뭐지? 하는 순간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격한 손짓을 하며 따라오란다. 느낌상 유료주차장 같았지만 더 이상 헤맬 수도 없어서 좁은 골목으로 따라갔다. 그랬더니 나더러 내리란다. 본인이 주차를 해주겠단다. 골목이 너무 좁아서 그런 모양인데 일본까지 와서 발렛파킹이라니... 주차는 자기가 할테니 500엔을 내고 맘껏 즐기다 오란다. 차 안에 짐이 다 있는데 차키까지 통째로 맡기라니... 찜찜했지만 아저씨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내비년때문에 기분이 상할대로 상해있던 터라 슈리성을 봐도 흥이 나지 않았다. 체험학습을 왔는지 학생들이 많았다. 오키나와 북부의 학생들은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여긴 나름 도시라 그런지 일본드라마에서 보던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저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어떻게 생활할까 싶다. 보는 내가 아슬아슬해서 안에 속바지들은 다 입었나 궁금해진다. 참~ 오지랖이다.  일본 학생들 사이에 껴서 의무적으로 한바퀴를 휙~ 돌고는 차가 잘 있는지 확인부터 한다. 다행히 차는 멀쩡했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 혹시 몰라 어젯밤에 슈리성 근처 식당을 검색해 봤다. 역시 소바와 커리 파는 식당만 많았고 그 중 먹물스파게티와 피자를 파는 식당을 발견하고 맵코드를 캡쳐해 놨다. 슈리성에서 3분 거리에 있다는 식당을 찾아가는데 대로변 한복판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온다. 이 많은 가게 중에 대체 어디? 주차장도 하나 없어보이는데? 이런... 나쁜 내비년...


어딘지 알 수가 없으니 결국 못 찾고 정처없이 가다가 패밀리마트를 발견하곤 일단 차부터 세운다. 일본 내비게이션은 주행중엔 조작이 안 된다. 무조건 차를 세우고 기어를 P에다 놔야 조작할 수 있다. 헤매다 보니 시간이 1시가 다 됐다. 더 헤매다간 점심도 못 먹을 것 같아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이것저것 고르고 렌지에 뎁혀달라고 해서 받았는데 어디서 먹냐고 물으니 먹는 데가 따로 없단다. 헐~! 그럼 도시락은 왜 뎁혀주고 컵라면 물은 왜 주는건데? 차에 갖고 가서 먹을 수도 없고... 카운터 옆에 작은 공간이 있길래 여기서 먹어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먹으란다. 점원은 우리가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불쌍해서 그냥 먹으라고 했나보다. 내가 이 나이에 일본까지 와서 편의점 구석에서 컵라면이나 먹고 있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으나 자꾸 어이 없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허허허허허....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르게 먹고는 주유소를 찍고 가는데 이번엔 차가 엄청 막힌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 대낮에 무슨 차량정체인지... 하필 주유소 가는 길이 나하시내에서 제일 복잡하다는 국제거리를 통과해야만 했나보다. 국제거리를 통과하는데만 20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우리한테 국제거리 구경하라고 그랬나? 짜증은 나지만 일단 좋게좋게 생각하고 2시가 넘어서 주유소에 도착했다. 자신있게 주유구를 열고  '레귤러 만땅"을 외친다. 3박4일을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2천 3백엔인가? 얼마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연비 하는 끝내주는 것 같다.


무사히 주유를 마치고 드디어 렌트카사무소 입성!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차에 흠집 하나없이 운전하느라 정말 애썼다 애썼어... 처음 오키나와에 왔을때 거리에 차밖에 없어서 이상했는데 직접 운전을 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차가 아니면 절대 운전을 할 수가 없는 곳이라는걸~

  

렌트카 반납까지 마치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가보니 티케팅하는 줄이 어머어마하다. 이 작은 공항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나타난건지... 한참이 걸려 짐까지 부치고 나서 보니 무려 1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된단다. 1시간이나? 별다른 설명도 없이 방송으로 탑승시간이 변경됐다는 안내멘트만 달랑~ 어이가 없다.


공항이 작아 면세점도 몇 개 없고 할 일도 없고... 먹어보고 싶었던 복숭아 맥주를 마시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또 출발이 지연된단다. 그리고 얼마 후 또 지연된다는 안내방송. 지금 장난하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안 보이니?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하는 직원이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성의없는 안내멘트에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 일진이 대체 왜 이렇다냐....  


1시간 30분가량이 지연되어 결국 6시가 넘어서 비행기가 이륙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타고 보니 자리는 왜 이리 좁고, 뒤에 있는 애기들은 좌석을 발로 자꾸 차고, 저녁시간이라 옆사람들이 시켜 먹는 라면 냄새는 진동을 하고, 비행기 날개 자리라서 엔진소리는 시끄럽고... 정말 비행기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게다가 이륙하고도 난기류때문에 20분 넘게 비행기가 흔들흔들 롤러코스터를 탄다. 안그래도 오늘 일진이 계속 안 좋은터라 혹시 무슨일이라도 생길까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길고 길었던 2시간여의 비행이 끝나고 착륙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입국수속을 하는데 나하공항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다들 피곤에 찌든 얼굴로 좀비들처럼 줄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입국수속까지 마치고 짐을 찾는데 찾고 보니 잠금장치가 파손돼 있는게 아닌가? 이건 또 뭔일이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제주항공 직원에게 얘기하니 보상차원에서  15,000원을 입금해주거나 택배로 수거해서 수리해준단다.

뭐 이런 일이........

살펴보니 안에 짐들은 모두 그대로 있고 손을 댄 흔적도 안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건가.


그냥 버리고 다시 살까? 하다가 일단 수리를 하는 쪽으로 처리를 하고 리무진 티켓을 끊고 밥을 먹으러 갔다. 얼큰한 해물탕을 시켰는데 한 숟가락을 뜨고 보니 세상에 머리카락이 들어있는게 아닌가~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다. 더이상 화를 낼 기운도 없다....


너무 배가 고파서 일단 다시 끓여온 해물탕을 꾸역꾸역 먹었다. 오늘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다.... 내 평생 이렇게 불운의 연속인 날은 없었는데 새해 액땜 제대로 하나보다.


10시 30분 버스를 타고 새벽1시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종일 꼬이는 일이 너무 많아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었지만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모든 공항에선 의심스런 수하물이 있으면 트렁크를 열고 검사할 권한이 있단다. 열 수 없을땐 잠금장치를 부술 수도 있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내가 운이 좀 나빴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이번 여행은 마지막까지 정말 버라이어티했다. 그 순간엔 짜증이 나고 어이가 없을지라도 지나고 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소중한 추억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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