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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Jan 27. 2016

따뜻한 차 있습니까?

暖かい車か?

오키나와에서 세번째 아침이 밝았다. 더불어 오키나와에서 운전한지도 3일차가 되는 날이다. 영원히 적응이 안 될 것 같았던 오키나와 운전도 가끔씩 와이퍼랑 깜빡이를 헷갈리는거 빼고는 과속도 하고 추월도 하는 걸 보면 그새 꽤 익숙해졌나보다. 내일이면 완전 베스트 드라이버 되겠다. 참고로 오키나와에선 시내주행은 시속 50km, 고속도로는 80km이다. 오키나와 운전자들은 완전 양반 중에 상양반인걸로~


오늘 아침은 일본식으로 스시 돈부리, 미소된장국, 나또, 생선구이, 장아찌로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오키나와는 다 좋은데 먹을게 마땅치 않다. 어딜 가나 각종 소바에 돈까스카레, 타코라이스뿐이다. 그래서 아침을 잘 먹어둬야 한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첫번째 여정인 만좌모로 출발하려는데 또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진다. 어제도 그러더니, 비가 많이도 안 오면서 사람 약 올리듯 오락가락... 우산을 폈다 접었다의 반복이다. 지금이 오키나와의 우기인것인가~


오키나와에서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인증샷을 찍겠다고 어제부터 유니폼을 들고 다녔는데 도통 찍을 타이밍을 못 찾았다. 오늘은 오키나와의 상징인 만좌모에서 꼭 찍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만좌모에 갔으나 바람이~~~~!!! 이건 뭐 태풍수준이다. 사진마다 머리가 미친년 산발이다. 건질 사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이따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보기로 한다.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도하며...

사실 만좌모는 한국인이 유난히 많고 바람도 부는 것이 딱 제주도 성산일출봉이다. 풍경도 만좌모만 빼면 제주도라고 해도 다 믿을듯 싶다. 그래도 사진으로만 보던 만좌모를 실제로 보니 신기하고  멋졌다.


만좌모는 저녁을 기약하고 오키나와의 민속촌이라 불리우는 류큐무라로 향했다.  혹자는 우리나라 민속촌과 비교하니 너무 시시해서 돈이 아깝다고 했으나 우린 나름 만족스러웠다. 사실 오키나와만 보자면 그다지 일본스러운 맛이 안 났는데 여기 와보니 일본에 와 있다는게 실감이 났다. 중간 중간 펼쳐지는 예능공연(?)도 나름 볼만했고, 무엇보다 어딜가나 보이는 꽃들이 우릴 흥분하게 했다. 우린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음은 비오스의 언덕. 딱히 볼게 없고 지루했다는 사람들의 평이 있었지만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나로선 구미가 당기는 곳이었다. 비오스의 언덕 입구로 들어서자 펼쳐지는 초록의 향연, 딱 그 순간 거짓말처럼 햇살이 비쳤다. 그래! 바로 이거지! 우린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햇살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도착한 비오스의 언덕.

그런데 주차를 하고 내리자마자 날씨가 흐려진다. 이런...........................

그래도 초록나무와 꽃들이 날 설레게하기엔 충분했다. 여기저기를 흥분상태로 뛰어다니다가 호수유람선을 탔다. 혹시 멀미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참을만 했다. 선장아저씨가 한시도 쉬지 않고 설명을 하면 승객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유람선 안에 유일한 한국인인 우리만 못 알아듣고 계속 멍~~~ 아... 답답해~~~

나중엔 그냥 그들이 웃으면 그냥 영혼없이 따라 웃었다. 하하하하!!!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날씨도 쌀쌀해져서 따뜻한 차나 한 잔 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말이 안 통하니 구글 번역기에 '따뜻한 차 있나요?' 하고 입력했더니  ' 暖かい車か?' 라고 나온다.

웬열~~~  ' 車' 라고? 얼마전 꽃청춘의 '핫도그 세개 주세요'(please hotdog world)와 뭐가 다른가? 순간 웃음이 빵 터진다. 다시 정신 차리고 '따뜻한 음료 있나요?' 라고 쓰니 제대로 나온다. 구글번역기는 진정 개그맨인 것인가?


빗방울이 좀 잦아들자 우린 다시 탐험을 시작한다.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거짓말 조금 보태면 열대우림이 펼쳐진다. 사람이 없고 사방이 고요하다. 사람이 없으니 유니폼 인증샷이 생각났다. 전혀 일본스럽지 않은 정글에서 인증샷이라... 그럼 어떠랴~

간만에 셀카봉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데 친구가 말하면 음성인식으로 찰칵 찍히는데 나는 아무리 수십번 눈물나게 '김치~!!', '스마일~!!을 외쳐도 꿈쩍을 안 한다. 내 폰인데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는건지...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해서 찍힐때까지 미친듯이 '김치~!'를 외치다 드디어 성공!!! 눈물이 난다...


마지막 코스로 만좌모에 다시 갔다. 이번엔 중국인 관광객들의 인파에 떠밀려 갔다. 여전히 바람은 거셌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인증샷 타임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래도 꿋꿋이 기다려 인증샷을 찍어냈다. 대견스럽다. 인증샷이 뭐라고, 내가 이러는 걸 회성이가 알아주기나 한다냐~

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아니 한 가지 숙제가 더 남았다. 저녁메뉴~! 일단 숙소에 들어가서 폭풍검색을 한다. 근처에는 말만 들어도 지겨운 소바집과 스시집이 있었다. 소바는 무조건 패스. 남은 건 스시인데 아직 어린애 입맛인 친구는 스시를 전혀 못 먹는다. 그래서 비싸지만 리조트에서 바베큐뷔페를 먹으려다 블로그에 올라온 스시집 메뉴에서 극적으로 두부요리를 발견하곤 스시집으로 결정했다.


리조트에서 채 5분이 안 걸리는거리. 초밥과 두부요리, 이름 모를 생선탕과 치킨까지 시켜서 정말 배 부르게 먹고 남은 치킨은 이번에도 구글번역기를 동원하여 포장해왔다.참! 일본에도 공깃밥이 있었다. 두부요리가 밥이 안 나와서 혹시 몰라 물어봤더니 있단다. 오키나와에서 공깃밥 추가해서 먹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걸?


암튼 포장해온 치킨으로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을 치맥으로 마무리하려 하였으나 빵빵한 배는  꺼질 줄을 모르고 결정적으로 유리같은 내 몸이 오늘의 찬바람을 견디지 못해 감기약을 먹어야하는 관계로 치맥은 못 한 채 아쉬운 마지막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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