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셜리 Apr 21. 2016

헤밍웨이도 반한 스페인 론다

그 아찔한 아름다움

스페인 part2.

헤밍웨이가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으로 추천했다는 절벽 위의 도시 론다


스페인에 오기 전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견한 론다의 누에보 다리 사진 한 장.

절벽 위에 서 있는 누에보 다리의 아찔하고도 당당한 자태에 압도되어 꼭 한 번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전날부터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치고 아침부터 뭘 입어야 할지 우왕좌왕이다.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어제 네르하에서 산 핫핑크 야구점퍼를 골랐다. 참~ 스페인과는 안 어울리는 패션이다. 스페인 여행자 수칙 중에 '튀는 옷을 입지 말라'는 말이 있어서 소심한 나는 곧이 곧대로 칙칙한 옷만, 그것도 몇 벌 안 가져왔더니 입을 옷이 너무 없어서 현지에서 조달한 것이다. 역시 사랑도 여행도 글로 배우는 건 위험하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산 이 뜬금없는 야구점퍼는 내가 좋아하는 '핑크'와 '야구'의 조합이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 건데 막상 입어보니 튀어도 너~~~ 무 튄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어딜 봐도 원색의 옷을 입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조금 부끄럽지만 난 괜찮다. 여긴 스페인이니까.


일요일이라 차편도 버스시간도 애매해서 늦게까지 호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11시 30분 버스를 타고 론다로 향했다. 고속버스라 좌석도 지정돼 있는데 분명 2명이라고 말했는데도 좌석이 떨어져 있다. 일행이랑 상관없이 무조건 표를 산 순서대로 자리를 주나 보다. 자리가 떨어져 있다고 궁시렁대며 버스에 올랐는데 자리가 문쪽 맨 앞자리다. 노래나 좀 들으며 갈까 하고 이어폰을 꽂았는데 운전기사 아저씨가 자꾸 딴짓을 한다. 안 보고 싶은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코를 쉴 새 없이 후비고, 1.5리터 생수명을 통째로 두 손으로 들고 마시고(그럼 운전은 대체 어느 손으로 하냐구요.ㅠㅠ), 사탕을 두 개나 까드시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시고, 정서불안증세가 있으신지 손톱을 자꾸 물어뜯으신다. 믿을 수 없지만 이 모든 행동들이 고속도로 위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하... 불안하다. 맘 편히 음악이나 들으며 가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무산되고 난 아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런 장면은 나만 목격하게 되는 것인지, 왜 나만 이런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해야 하는 것인지... 짜증도 났지만 그래도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봤기에 무사히 잘 도착한 것이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론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생각보관광객들이 꽤 많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보니 누에보 다리에 도착했다. 와~~~~!!! 역시 가까이 보니 정말 굉장하다. 아래쪽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아찔한 높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다리를 놓고 마을을 이루고 살았을까? 무섭지만 다리 아래 협곡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선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구간도 있었지만 내려가 보니 비로소 다리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올려다 볼수록 정말 대단하다.


론다에서 누에보 다리를 봤다면 론다의 80퍼센트는 다 본거나 마찬가지지만 걷다 보면 소소한 볼거리가 꽤 있다. 작고 아담한 동네라 해찰하며 걸어도 둘러보는 데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 투우장과 산 마요르 성당을 둘러보고 절벽 위의 레스토랑에서 꽃할배도 드셨다는 소꼬리 스튜를 시켰다. 정말 맛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딱! 우리나라 갈비찜 맛!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스페인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남기지 않은 음식이었으니 믿고 먹어도 될 것 같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터미널로 가려는데 올 때 관광객들을 따라 생각 없이 와서 그런지 가는 길을 못 찾겠다. 이렇게 멀지 않았던 것 같은 데 가도 가도 터미널이 안 나온다. 순간 당황했지만 말도 안 되는 바디랭귀지로 무려 6명에게 길을 물어 겨우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긴장한 상태에서 너무 열심히 걸었더니 배가 금방 꺼졌다. 떨어진 당을 보충하기 위해 터미널 안에 있는 작은 매점에서 문어 젤리를 샀다.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안고, 문어다리를 뜯어먹으며 버스를 기다린다. 이어폰에서는 '한여름밤의 꿀'이 흘러나온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여름은 아니지만 이름도 낯선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달달한 젤리를 뜯으며 음악을 듣는 지금 이 순간이 꿀이다. "지금 이 순간이 꿀~"




매거진의 이전글 정교함의 끝! 알함브라궁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