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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Apr 20. 2016

프리힐리아나에서 모히토 한 잔?

스페인의 작은 천국

스페인 part1


스페인에 와서 처음 맞는 아침 아니 새벽.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스페인 덕분에 코리안 타임에 맞춰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여긴 아직 이른 새벽임에도 눈이 번쩍! 습관이 참 무섭긴 무섭구나. 일찍 일어난 덕분에 7시 30분에 시작하는 호텔 조식을 문 열기 전부터 기다려서 1등으로 먹었다. 이상하게 한국에선 몇 숟가락 뜨지도 않는 아침을 외국에만 나오면 아침부터 몇 접시씩 먹어치우며 과식을 한다. 호텔 조식을 먹어야 비로소 내가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나서 그런가 보다. 그냥 그 느낌이 좋다. 버터향 가득한 스크램블 에그가 좋다.

말라가 거리 풍경

아침을 잔뜩 먹고 말라가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친구가 날마다 짐 싸서 옮겨 다니기 귀찮다고 말라가에서 3박을 하자는 바람에 말라가 터미널에서 근처 도시를 버스로 여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제 오후에 말라가 성당과 시내를 돌아보고 오늘 첫 여행지로 네르하와 프리힐리아나로 정했다. 버스를 타고 네르하로 가는 길. 어제 말라가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네르하 가는 길에 보니 말라가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해안선을 따라 짙은 쪽빛의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 강아지를 데리고 해안가를 달리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저렇게 한 번 살아보고 죽어야 하는데..'하고 부러움 섞인 투정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와 본 게 어디냐며 위안을 삼아 본다.

버스 창문 너머로 본 말라가 해변

한 시간여를 달려 네르하에 도착했다. 정류장에 내려서 먼저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바다 끝 전망대에 갔다. 가는 길 골목골목마다 어쩜 그렇게도 예쁜지 투스텝, 쓰리 스텝이 절로 나온다. 사뿐사뿐 날듯이 걸어 골목길 끝 모퉁이를 돌아서기 직전! 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바로 요만큼만 돌아가면....!

돌아서자마자 보이는 확 트인 푸른 바다와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바보처럼 '와~~~ 멋지다' 만 연발할 뿐이다. 계속 감탄하며 보다 보니  이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봤으면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 혼자 몰래 꿀을 훔쳐 먹다가 들킨 것처럼 미안하고 죄짓는 기분이다.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

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프리힐리아나행 버스를 타러 갔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표를 어디서 사야 되나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우릴 지켜보던 꼬마가 자기가 영어를 아주 쪼끔! a little 할 줄 안다며 자기만 따라오라고 앞장을 서고 한 아주머니는 우리가 엉뚱한 곳으로 갈까 봐 버스를 탈 때까지 지켜봐주신다. 이 곳 사람들은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예쁜 풍경 속에 살아서 그런지 하나같이 순수하고 마음씨가 예쁘다. 스페인에 소매치기가 많다고 복대까지 해가며 낯선 사람들을 경계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마음씨 착한 꼬마와 아주머니 덕분에 무사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구비구비 비탈길을 달리니 내가 꿈에도 그리던 프리힐리아나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또 '와~~~~~' 계속 '와~~~~~'

어쩜 이리도 예쁜거니....

산비탈에 지어진 온통 하얀 집들과 미치도록 파란 하늘, 멀리 보이는 푸르고 푸른 바다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예쁜 꽃들까지... 이러니 내가 안 좋아할 수가 있나.

하얀 골목길을 구석구석 빠짐없이 두 눈에 담으며 걷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다가 마을 전체가 다 보이는 전망이 끝내주는 카페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정말 전망이 장난이 아니다. 메뉴는 이탈리안 식당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파스타가 가장 무난할 것 같아서 파스타만 두 개를 시켰는데 맛이..... 스파게티 맛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입 먹었다가 깜짝 놀랄 정도. 어떻게 스파게티에서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지? 분명 모양도 냄새도 틀림없는 스파게티인데 맛은 스파게티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면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소스 삼아 꾸역꾸역 먹어본다. '그래.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어디 그렇게 흔하다냐. 전망이 이렇게 좋은데 맛쯤은 포기해야지... 스파게티는 한국 가서 먹으면 돼.'

심 메뉴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프리힐리아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예뻤다. 쉬지 않고 골목을 걷고 또 걷는다. 일분일초가 아쉽지만 프리힐리아나에서의 여유를 누려보고 싶어서 고양이가 반겨주는 노천카페에 갔다. 얄짤없는 햇살이 눈이 부시다. 뭘 시킬까~~ 그래! 이런 날씨에 딱 맞는 게 하나 있지! 바로 모히토!!!

눈부시게 푸른 하늘,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마시는 푸릇푸릇한 모히토 한 잔! 시원하고 상큼하고, 알딸딸한 게 정말 기가 막히네~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이 순간이 나에겐 천국이다.

스페인은 정말 볼거리가 많은 나라지만 소박한 천국을 느껴보고 싶다면 프리힐리아나에서 모히토 한 잔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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