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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Sep 17. 2016

느티나무 아래 바람이 분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시간


며칠 전 신문기사에 가을날 걷기 좋은 길로 삼년산성이 나왔길래 차가 막힐걸 예상하고도 길을 나섰다. 가족들이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좋다는 말만 믿고 처음엔 룰루랄라 걸었으나 걸어도 걸어도 산성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근데 이건 산책이 아니라 등산 수준...

사람도 없고 길은 가파르고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후두둑 후두둑~ 온갖 곤충들이 뛰쳐나온다. 인적이 뜸하니 멧돼지가 나오면 어쩌나 뱀이라도 나오면 어쩌지? 걱정걱정을 하며 간신히 뛰는듯 내려왔다. 우리가 길을 잘못들어서 이런가 싶다가도 그 기사를 쓴 기자가 누군지 쫓아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게다가 둘 다 점심을 안 먹은 상태라 기운이 쭉 빠지고 다리가 후둘거려서 정말 하지도 못하는 욕이 나올뻔?했다.

무조건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길가 슈퍼에 들렀으나 문이 닫혀있고 식당도 닫힌 곳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도 얼마가지 않은 곳에 가게 문이 열려있고 추석이라 온 가족이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삼대가 도란도란 정겨운 모습이었다.

이제 살았다~! 작은 가게지만 컵라면도 있다~!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먹는 컵라면이 이런 맛이려나? 허기진 아니 탈진한 상태에서 먹는 컵라면은 완전 꿀맛이었다. 추석이라 친정에 오셨다는 아주머니께서 김치까지 챙겨주시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신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시간이지만 오래 알고 지낸 이웃처럼 정겹다. 그리고 컵라면 후에 먹는 초코다이제스티브는 완전 꿀이다 꿀~♡

다음은 힐링타임.

파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느티나무 아래 앉아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으니 저절로 눈이 감긴다.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이 분다. 시원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느티나무 사진을 찍는다.  의도치 않았지만 어느새 우리가 사진모델이 된다. 혹시 그분들 사진에 방해가 될까봐 좀 일찍 일어서는데 사진 찍는 분들이 모델이 돼줘서 오히려 감사하다신다.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올것을... 많이 부끄럽네..ㅎㅎ

황금들판을 가르며 집으로 가는 길.

가다가 보니 코스모스 내 뒤통수를 잡아끈다. 차를 돌려 세우고 코스모스길을 걷는다. 가보니 초등학교 가는 길이다. 이 아이들은 꽃길을 걸으며 학교로 가는구나. 출근길이 이렇게 아름답다면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으려나?

암튼 평화롭고 여유로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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