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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Nov 07. 2016

가을을 찾아 나선 이유

결국은 좋아하는거였어

가을이 왔다. 아니! 가을이 가고 있다.

수영선수가 풀벽에 발바닥을 튕기며 턴을 하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돌아서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지만 사실 사계절을 통틀어 나다니기 가장 좋은 계절은 누가 뭐래도 가을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 눈이 시리도록 높고 파란 하늘, 끈적임 없이 따사로운 햇살,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황금들판과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들까지... 파란 가을 하늘 덕분에 아무데나 찍어도 풍경화가 되는 계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난 가을이 좋으면서도 싫다. 아니 싫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꽃과 초록 잎사귀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어둠, 추위, 쓸쓸함,삭막함들이 화려한 가을 뒤에 숨어서 눈만 빼꼼 내놓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래서 아침 출근길 가로수가 하루가 다르게 빨갛게 고운 빛으로 물들어갈때마다 애써 외면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외면하고 싶어하던 가을을 찾아 주말마다 찾아 헤매고 다니는 나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냥 역마살인건가?

이런 감정을 어찌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좋지만 싫고,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긴한데... 또 보고는 싶은 마음..."

이건 마치 내가 뱀을 소름끼치게 싫어하면서도 TV에 나오기만 하면 자연스레 TV 앞으로 다가가 다글다글 돋은 닭살을 손으로 비벼가며 보고 있는 마음이랄까?그래서 가끔은 나의 진짜 속마음은 뱀을 싫어하는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런 논리라면 결국 나는 가을을 싫어하는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글을 쓰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난 가을이 싫은 게 아니라 가을 뒤에 오는 것들이 싫었던 것 같다.

좋든 싫든 이번 해를 떠나 보내야 하고, 누군가와는 이별을 해야할 수도 있고,  또  원치  않게 나이를 또 한 살 먹어야 한다는게 그것이다. 막연하게 가을 뒤에 올 이별과 끝이 두려웠던것 같다.

그래서 바보처럼 다가올 겨울을 두려워하면서 현재의 가을을 마음껏 즐기지 못 했나보다.


맞다! 바로 그거다!

난 가을을 싫어하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짧은 가을, 그 찰나의 순간이 너무나 애처롭게 아름다웠고 그래서 더 나의 애간장을 끓게 했던거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깨달았으니 정말 다행이다. 안그럼 괜히 애꿎은 가을을 계속 미워할뻔 했다.

내가 가을을 찾아 끊임없이 길을 나선 이유...

결국은 가을이 너무너무 좋아서였던거다.


* 올 가을, 3주전부터 가을을 찾아 주말마다 길을 나섰지만 어떤 곳은 너무 이르고 어떤 곳은 너무 늦어 제대로 된 가을을 담지 못했다.


[3주간의 루트]

무주 적상산 - 속리산 - 대청댐 가는 길  - 금산 보석사 - 요광리 은행나무 - 갑사 - 신원사 - 송산리 고분 -  공주교도소 은행나무


그래도 가을은 그 안에 있었다.

대청댐 가는 길
대청호 억새
갑사 가는 길
갑사의 단풍
신원사의 가을
보석사의 작은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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