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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Nov 20. 2016

풀어지는 봄날같은 가을의 끝

잘가라는 인사를 남기고

가을은 그 끝자락마저 보일락말락 아련해져가는데 오늘 날씨는 풀어지는 봄날처럼 따뜻하다.

오랜만에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고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혼자 무작정 길을 나섰다. 우와~ 따뜻하다... 근래 들어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다. 날씨만 보면 완전 봄이다. 봄.

그것도 풀어지는 봄~


시동을 켜고 음악을 랜덤으로 플레이하고 핸들을 잡는다. 어디로 갈까?...

내일 출근을 해야하니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가야겠다. 잠깐 머리를 굴려본다.

그래! 영동에 있는 송호유원지로 가야겠다. 가는 길에 강선대에 잠깐 들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옥천성당에 들렀다 와야겠다는 계획이 순식간에 세워졌다. 그래그래 괜찮네!


봄날처럼 나른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차 앞유리에 가득 퍼지고 랜덤으로 플레이한 노래는 귀신같이 가을 노래들을 쏙쏙 뽑아주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만큼 흥얼흥얼 시작은 좋았는데 도로 바닥을 뒹구는 낙엽과 센치한 발라드는 점점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나의 쓸쓸함은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에서 절정을 달렸다. 갑자기 가슴이 묵직해진다. 이 생각 저 생각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 이럴려고 나선 길이 아닌데...

마음이 저 깊은 바닥까지 내려갔을 즈음 갑자기 비트가 빨라진다. 오예~! 유재석의 'I'm so sexy'! 유재석의 노래가 나의 침잠하는 마음을 순식간에 수면 위로 끌어올려준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니 어느새 강선대에 도착했다.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고 전해지는 곳이라 그런지 역시 절경이다. 강선대  정자에 올라서니 강 건너에 송호유원지가 보인다. 바로 코 앞이다.

차로 2분여를 더 달려 송호유원지에 도착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와봤지만 이런 늦가을에 온 건 처음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소나무숲이 보인다. 초록색 융단 위에 푸른 소나무 그리고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소나무숲만 보면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아니면 여름인지 정말 가늠이 안 된다. 소나무숲에 감탄하며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이번엔 소나무향이 폐 안쪽 깊은 곳까지 훅 들어온다. 정말 깊고도 신선한 그리고 깨끗한 향이다. 그 어떤 방향제도 따라올 수 없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향이다.

소나무향에 취해 걷다보면 강가에 죽 늘어선 나무들이 보인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강물과 대조적으로 나무들은 하나같이 앙상하게 옷을 벗고 있다. 그 많던 잎사귀들을 우수수 떨궈내고 혼자가 되었다.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바스락거리는 잎사귀가 애처롭다.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이 이와 같을까?...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오늘처럼 쓸쓸하진 않았을거란 생각에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옥천성당에 들렀다. 일요일이라 미사 시간이랑 겹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미사는 끝났나보다.

조심스레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성당 안엔 아무도 없었다. 종교는 없지만, 아니 어쩜 너무 많지만 오늘은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싶었다. 맨뒷자리 끝에 자리를 잡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래서 다들 종교를 갖고 기도를 하나보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건 내가 그렇게까지 착하고 희생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의 모든 기도는 내가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주변사람들에 대한 기도였다는 것이다. 날 위한 기도는 편지 끝에 붙이는 P.S처럼 마지막 한 줄이거나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던거다. 이건 아마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비슷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세상 사람들은 보기보다 참 착하다.

봄도 가을도 아닌 이상한 날씨 때문인지 내 마음도 종잡을 수 없이 오락가락했지만 그래도 떠나는 가을에게 잘가라는 인사를 해주고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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