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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Sep 30. 2016

녹색 시루떡에 하얀 콩고물을 뿌린듯

깊은 산 속 메밀꽃밭

일요일 아침.

잠은 진작에 깼지만 이불 속에서 바로 나오기엔 왠지 아쉬워 자꾸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누운 채로 '어딜 가볼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계속 머리를 굴려본다.

'대전천변 하상도로에 코스모스가 피었다는데 거길 갈까. 아님 청주 어느 산골짜기에 피었다는 메밀꽃을 보러갈까...'

그래! 결심했어! 신탄진에 가서 해물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청주 메밀꽃밭을 들러서 내가 애정하는 플라워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고 돌아오는거야!


머리를 감고 대충 찍어 바른 다음 해물칼국수집으로 출발했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을걸 어느 정도 예상하긴했지만 생각보다 대기인수가 많다. 대기표를 뽑고 보니 우리 앞에 16팀이나 있다. 잠깐 망설였지만 일단 기다려보기로 한다. 20분을 넘게 기다려 바지락에 전복까지 들어간 칼국수를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블로그에 나온 주소를 찍고 메밀꽃밭으로 출발했다. 30분쯤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엥? 이게 뭐니~?' 막다른 길에 문이 굳게 닫혀있는 공장 앞. 사방을 둘러봐도 메밀꽃 비슷한 것도 없다. 블로거에게 여기가 어딜 봐서 메밀꽃밭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안그래도 블로그 마다 가는 길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내비에도 안 나오는 산골짜기라며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라고 해서 어찌 찾아가나 걱정을 했던 터이지만 그래도! 모르면 적어 놓지를 말았어야지!


블로그는 믿을게 못 된다고 성질 성질을 부리면서도 의지할 곳은 블로그 뿐이라 다른 블로그에 나온 추정3리 경로당을 찍고 갔더니 역시 차 한대도 빠져나가기 힘든 시골 골목길에서 내비가 딱 멈춘다. 어디에도 메밀꽃밭은 없고... 다시 어렵게 어렵게 후진해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추정1리 마을회관을 찍고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이번엔 내비년이 문제다. 자꾸 좁디좁은 골목길로만 안내한다. 사람 둘이 가까스로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자꾸 자꾸 들어가라한다. 허참~ 어이가 없어서...

넌 도보용 내비가 아니잖느냐!!! 어찌 사람만 갈 수 있는 길을 차더러 가라는거냐!!!

계속 씩씩대다가 간신히 후진으로 차를 빼서 근처에 차를 세우고 좁은 골목으로 걸어들어가니 마을회관이 보이고 차다니는 길이 보인다.

어쩜~ 이렇게 멀쩡한 길을 놔두고...

짜증이 밀려온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지않은가. 마을회관 앞 아주머니께 메밀밭 가는 길을 묻고 차를 다시 가지고 좁디좁은 산길을 돌고 돌아 메밀꽃밭에 도착했다. 정말 블로그에 나온대로 등성이하얀 메밀꽃밭이 쫘악 펼쳐져있다. 마치 녹색 시루떡 위에 하얀 콩고물을 뿌려놓듯 하다. 오늘의 고생을 보상하기엔 쪼끔 부족했지만 산 위에 올라가서 보니 역시 아름답긴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을거란 우리의 예상을 깨고 꽤 많은 사람들이 메밀꽃밭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사람들은 여기까지 대체 어떻게 온걸까~~~ 정말 대단하다!

메밀꽃밭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집으로 가는 길에 플라워카페로 향했다. 나에게 항상 힐링을 선사했던 곳. 문을 열면 꽃향기가 먼저 반겼던 곳. 그러나 리모델링을 하면서 꽃의 공간은 줄이고 차 마시는 공간을 늘려놔서 뭔가 아쉬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작은 꽃송이를 하나 받았지만 아끼는 공간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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