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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Oct 08. 2018

묻지마 기차여행- 대구편

episode-2017.02.07.

아침 9시 대전역.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은 채 떠나는 '묻지마 기차여행'


열차 시간표를 쭉 살펴보니 가장 빨리 출발할 수 있고, 볼만한 곳이 있는 적당한 곳을 찾으니 대구였다. 바로 발권을 하고 9시 19분 출발 KTX를 타고 10시 4분 동대구역에 내렸다. 기차 안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다 둘러보려면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게 가장 효율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시티투어 버스가 동대구역 정류장에서 10시10분 출발이라는 점이었다. 과연 탈 수 있을 것인가. 정신없이 역사를 빠져나와 인포메이션센터에 정류장이 어딘지 묻고는 헐레벌떡 뛰어 간신히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아침부터 뜀박질을 하니 심장이 터질것 같다. 대구 시티투어버스는 5,000원으로 저렴한데 기차티켓이 있으면 또  20퍼센트를 할인해준다. 4,000원에 하루종일 버스를 탈 수 있고, 문화해설사의 재미있는 해설도 들을 수 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어디부터 갈까 하다가 청라언덕이 있는 근대골목길부터 가기로 했다. 가보니 역시 사람이 거의 없다. 청라언덕에 오니 셋 다 같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면...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 가사는 가물가물해도 제법 제대로 부른다. ㅎㅎ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 어딘가에 백합이 있을거라고... 그런데 청라언덕 담당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노래에 나오는 백합은 꽃이 아니라 작곡가인 박태준 선생님이 좋아했던 여학생이란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신명여고 여학생을 백합꽃이라 표현했던 것. 그리고 이 노래의 제목은 절대 '청라언덕'이 아니다.  '동무생각'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왜 '동무생각'이라 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청라(푸른담쟁이)언덕에는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선교사들의 사택을 의료박물관, 교육박물관, 선교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들의 묘지도 그 곳에 있다. 이 곳만 보자면 1900년대 한 복판에 와 있는 느낌이다.

청라언덕을 둘러보고 90계단(실제로 세어보니 90개가 안 되는 것 같은?)이라는 3.1운동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계산성당이 보인다. 1902년 프랑스 신부 로베로가 설계한 성당으로 한강 이남 최초의 고딕성당이라고 한다. 우리가 11시 20분에 갔는데 30분부터 미사시간이라고 해서 망설이다 잠깐 들어갔다가 미사 시간 전에 나와야겠다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문을 열자마자 뭔가 성스럽고 경건한 분위기가 날 압도한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제일 끄트머리 자리에 앉아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요즘 여러 가지 일들로 불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기도를 하니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진것 같았다. 원래 계획은 잠시 앉아 있다가 미사 시작되기 전에 나가려고 한건데 어쩌다 보니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기도문을 읽으면 성경책을 찾아 읽고 모르는 성가도 따라 부르다 조용히 나왔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미사에 참여해보니 아까 봤던 성당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새롭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성당을 나와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들렀다가 서문시장으로 가기로 했다.


다시 청라언덕을 거쳐 서문시장으로 가는 길에 너무 고풍스럽고 멋진 건물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계성중학교란다. 중세의 고성같은 이곳이 학교라고? 그것도 중학교?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남자분이 차에서 내리시더니 무슨 일로 오셨냔다. 이차저차해서 감탄하며 구경하고 있다고 하니 본인이 이 학교 진로부장인데 아는 한도 내에서 학교 안내를 해주시겠단다. 와~ 이렇게 친절할 수가... 학교 이 곳 저 곳을 문화해설사처럼 안내해주신다. 백년이 넘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라니 정말 신기했다. 고성같은 건물은 교장실, 행정실, 과학실, 도서실, 교실이 있고 바로 옆에 현대식 교실건물도 따로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학교 지하에는 독립운동 당시에 비밀리에 신문을 인쇄하고 독립운동을 결의하던 비밀공간이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역사적인 장소가 학교 지하에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보는 학교전경이 1년 중 제일 볼품 없을 때라며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하신다. 바쁘실텐데도 생면부지의 우리에게 귀한 시간을 내주신 김정호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서면시장으로 갔다. 4지구 시장을 지나가려니 비닐포장으로 가리긴했지만 얼마전 화재로 화마가 할퀴고 간 가슴 아픈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시장은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고 활기가 넘쳤다. 우리 목적은 먹거리이기에 3대천왕에 나와서 유명해졌다는 무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대구 3대 빵 중 하나라는 녹차크림단팥빵과 딸기크림이 들어간 사랑빵손님단팥빵을 먹었다. 배가 터질것 같다.

밥이 아닌 간식으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2015년에 개통했다는 모노레일을 초등학생용 단돈 500원으로(시티투어 티켓이 있으면 20% 할인해 준댔는데 모노레일 관리원이 그냥  초등학생용으로 끊으란다) 체험을 하고 다시 서문시장으로 돌아왔다. 시티투어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 못 탈뻔 했는데 지하상가 아주머니의 정확한 안내로 정류장을 금방 찾고, 아침보다 더 미친듯이 뛰어 시티투어버스를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사실 그때 시티투어 버스가 우리 옆을 지나가고 있어 포기하려다 정말 죽기살기로 뛰어 버스를 잡은 것이다. 심장은 터질것 같아도 뭔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다음 코스는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젊은 예술가들이 시장에 들어오게 되고 그들이 그린 김광석벽화로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됐다고. 처음엔 대구시에서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벽화를 그리려고 했는데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설득으로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이 탄생하게 되었단다. 예술가들의 설득이 없었다면 이 길은 김우중길이 될 뻔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골목골목 다니며 달고나도 만들어보고 술도 한 잔 마셔보는건데...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앞산 전망대 투어. 내가 좋아하는 지인이 예전에 대구에 앞산이 유명하다고 했을때 뒷산은 없냐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대구의 야경인데 평일엔 6시30분이 마지막 케이블카라(심지어 어제까진 점검하느라 운행을 안했다니 그나마 운이 좋은걸로) 멋진 야경은 볼 수 없었다. 슬프게도 요즘은 은근 해가 길어져서 6시30분이 다 돼도 깜깜하지 않다. 그래도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대구시내 전망은 단연 최고였다.

알차고 뿌듯했던 대구 투어를 마치고 오늘 하루 종일 밥다운 밥을 못 먹어 맛있는 밥을 먹어야겠다며 검색을 했는데 동대구역 근처에 국일불갈비집이 있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님께 말씀 드리니 자기가 아는 한 그런 곳은 없다고 다시 찾아보란다. 사실 그때 식당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돼지불고기랑 된장찌개 나오는 맛집인데 이름은 '국....일인가....' 잘 모르겠다고 어버버 거렸더니 고깃집은 다 된장찌개가 나온다며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맞는 말씀이시다. 웬만한 고깃집은 다 된장찌개가 나오지... 다시 검색해보니 국일불갈비집은 안 나온다. 뭐지? 아까 분명히 나왔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기사님께 맛있는집을 여쭤보니 동대구역 가기 전 칠성시장에 연탄 돼지불고기집이 맛있다며 그 앞에 내려주신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왔다는데 오래전부터 유명한 집이고, 가격도 1인분에 5천 밖에 안 한다.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뒤따라오던 친구가 가방속을 뒤지며 심각한 표정이다. 저건 휴대폰 잃어버린 각인데...  설마설마하며 다가가보니 휴대폰을 택시에 두고 내린것 같단다. 헐~ 막판에 이게 무슨 일이람... 설상가상으로 배터리도 5%밖에 없고 심지어 진동이란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계속 전화를 했는데 6번째에 웬 아주머니께서 받는다. 택시 승객이라며 기사님을 바꿔주신다. 상황을 설명하니 아주머니를 태워다주고 칠성시장으로 갖다주신단다. 정말 다행이다. 오늘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는 게. 그리고 여행의 끝까지 해피엔딩일 수 있다는 게 말이다... 휴대폰을 찾고 먹은 돼지불고기는 예상대로 정말 꿀맛이었다. 일을 마치고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우리에게 이 얘기 저 얘기 해주시는 아저씨들도 참 정겨웠다.

갑자기 정한 여행지였지만 대구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절대 하루만에 다 보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주말에 다시 와서 야경을 꼭 한 번 봐야겠다. 계성중학교도 꼭 다시 가 보고~


그리고! 이제서야 동대구역 맛집의 비밀을 알아냈다. 혹시나해서 대구역 맛집으로 검색하니 그 국일식당이 나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라 내가 대구역 맛집으로 검색했던거였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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