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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Oct 08. 2018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 떠나는 군위여행

episode- 2018. 8.8.~ 8.9.

언제부턴가 깜깜하고 사방이 막혀있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답답해서 잘 안 가다보니 믿을 수 없겠지만 '리틀 포레스트'가 올해 내가 본 유일한 영화가 됐다.  암튼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영화인 '리틀 포레스트'는 완전 내 스타일, 취향저격이다.


그래서! 남들은 잘 가지 않는 그리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 경북 군위로 여행을 떠났다. 아침 9시에 출발해서 11시 조금 넘어서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에 도착했다. 영화 도입부분에 나오는 혜원이 자전거 타고 가는 길부터 보일 줄 알았는데 거긴 여기가 아닌가 보다. 아주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혜원의 집이 있다. 오구네 집도 그대로고 혜원의 주방도 그대로다. 여기서 아카시아 튀김도 하고 막걸리도 만들어 마셨었지. 영화 속 장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마루에 앉아있자니 바람이 솔솔 분다.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두둥실 가벼워진다.


그 다음 일정은 급수탑이 있는 화본역(실제로 기차가 서는 예쁜 간이역)-화본국수전문점에서 점심(나중에 국수의 달인에 나올것 같은 느낌)-엄마 아빠 어렸을적에(폐교를 리모델링한 테마박물관)-읍내 카페에서 팥빙수-한밤마을(돌담길이 예쁜 마을)- 남천고택에서 저녁(예약 필수) - 남천고택 한옥펜션

남천고택이 에어컨이 없고 화장실이 밖에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한옥펜션으로 예약했는데(무려 9만원이나 한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우리밖에 없고 TV채널도 몇 개 안나오고(야구를 못 봐 ㅠㅠ), 와이파이도 안 되고, 뜨거운 물도 잘 안 나오고, 뭔가 깨끗하지도 않고... 잠금장치도 없고...ㅠㅠ 저녁 먹는 내내 본인이 방송출연도 많이 하고 농사도 짓고 고택에 한옥펜션 관리까지 하느라 엄청 바쁘시다더니 관리가 잘 안되나 보다. 아저씨한테 방문은 어떻게 잠그느냐 했더니 문고리만 걸고 자란다. 본인이 마을이장인데 절대 걱정 안해도 된다고 여기 둘밖에 없으니까 문 열어놓고 선풍기 틀어놓고 자란다. 도시처자들인 우린 무섭다구요...  문고리를 걸고 뭔가 꽂아둘걸 찾다가 그게 무슨 힘이 있겠냐마는 나무젓가락을 찾아서 꽂아본다. 역시 안 되겠다. 아저씨가 주고 간 방 자물쇠를 문고리에 걸어두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요즘 회사 업무 일정상 잠이 안 올 시기가 되기도 했지만 뭔가 불안하고 무서운 느낌에 잠이 오지 않는다. 한옥펜션은 남천고택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고 주변에 다른 고택들도 있지만 한옥펜션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무서운 마음이 자꾸 든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누워있는데 새벽 2시 동네 개가 계속 짖는다. 이 시간에 왜 개가 짖지? 낯선 사람이 나타났거나 아니면 개는 귀신을 볼 수 있다던데 설마 귀신이라도 본건가? 개소리를 들으니 더 무서워진다. 그러다 새벽 4시에 화장실을 갔다가 벽에 무언가 기어가는 것이 보인다. 가느다란 다리가 엄청나게 많은 벌레... ㅠㅠ 어떡하지? 내가 절대 잡을 수 있는 벌레는 아니고 그렇다고 곤이 자고 있는 친구를 깨울 수도 없고... 모르고는 자도 알고는 잘 수 없으니 나 혼자 못 자는게 낫겠다 싶어 혼자 벌레의 공포와 맞서며 벌레의 행로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이순간은 벌레가 귀신보다 백배는 더 무섭다... ㅠㅠ 그러다 벌레가 천장 위를 지나 천장 모서리 나무 틈 사이로 들어갔다. 거기가 집인가보다. 다시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를 20분 이상 지켜보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 9시. 비몽사몽인 채로 일어나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삼존불을 모셔놓은 제2석굴암에 갔다. 석굴암은 불국사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군위에도 있다니 신기했다. 원래 정해놓은 그 다음 일정은 창평저수지 드라이브 후 25년 경력의 수석세프님이 운영하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몽몽마방이었으나 식사 예약을 위해 어제부터 전화를 해도 계속 안 받는다. 휴가인가 싶지만 멀지 않으니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불도 켜져있고 문을 열었다! 와~신난다. 안에 들어가니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셰프님 혼자 요리를 하시는데 오늘은 그룹행사가 있어서 요리는 주문을 받을 수 없단다. ㅠㅠ 셰프님 얼굴을 보니 뭔가 더 먹어보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차선책이었던 구미 맛집 코레아경양식집으로 향했다. 치즈 소고기필라프?와 아보카도 샐러드를 시켰는데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소고기 필라프 중 단연 최고다. 엄지척!

밥을 먹고 바로 집으로 가기엔 아쉬워서 가는 길에 김천에 있는 방초정이나 직지사에 갈까했으나 방초정 배롱나무는 아직 만개 전이고 직지사는 만개했으나 주차장부터 절까지 폭염을 뚫고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


개소리와 벌레 때문에 잠만 설치지 않았더라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별볼일 없는 심심한 군위여행도 나름 좋은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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