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공방장
오늘은 냉장고에서 엄마를 발견했다. 공방에 들른 엄마가 냉장고가 비었다며 샤인머스켓 한 송이와 빵 두 가지를 넣어뒀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빵을 보며 엄마의 마음을 짐작해봤다. 잼이 발리지 않은, 생크림도 없는 엄마가 좋아하는 밋밋한 바게트였다.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그 빵이 보였다.
“에잇! 나 이 빵 안 먹는데.”
예상과 달리 바게트는 맛있었다. 크랜베리와 호두가 으깨져 있어서 밋밋하지 않았다. 고소하면서도 새콤하고 게다가 질기지도 않았다. 엄마가 넣어둔 두유랑 같이 먹다 보니 냉장고에서 엄마를 발견했구나, 싶었다.
구구와 함께 운영하는 공방 이름은 ‘바다가 분다’이다. 간판에는 바다가 분다라고 적혀 있고 조그맣게 핸드메이드라고 써져 있다. 사람들은 “여기가 뭐 하는 데에요?”라고 물으며 궁금해서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곤 한다. 육이오에 참전한 한 할아버지와는 친구가 되었다. 가게 밖에서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시길래 나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할아버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공방에 들어오실 수 있었고 대뜸 내게 물었다.
“바다가 분다가 뭐꼬?”
배시시 웃으며 나는 되물었다.
“바다가 바람처럼 불면 어떨까요?”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바다가 춤을 추겠네.”
“맞아요. 바다가 춤을 추겠네요.”
할아버지는 이제 4일, 9일 삼천포 5일장이 서는 날마다 들리셔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공방은 삼천포 한적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유동인구는 많아야 15명 정도 지나다닌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저렴한 월세 덕분이다.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외진 곳은 아니라는 점이다. 삼천포 터미널과 용궁수산시장으로 통하는 큰 도로변에 있어서 간혹 관광객이 입장하기도 한다. 저녁 7시 30분 서울행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가던 한 어르신께서 공방에 들리셨다. 이것저것 구경하시고 구매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삼천포 사람들은 수준이 낮아서 장사가 안 될 텐데요.”
나는 웃으면서 그 말을 되새겨 봤다.
그렇다면 낯선 공예품을 여기서 판매하는 내가 잘못인 거지, 삼천포 사람의 수준을 탓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리고 내가 본 삼천포 할아버지는 충분히 근사하다.
오늘은 줄에 조개껍질을 매다는 간단한 작업을 하며 또 생각했다.
“누구나가 만들 수 있는 쉬운 공예품을 만드는 것 참 좋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을 수준을 탓하며 그들을 나무랄 수 있을까.”
구구가 오늘 진지하게 한마디 했다.
“공방이 비어 보여요.”
게으른 내 잘못이 크다. 하지만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정신을 부여잡고 공방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한 선에서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래야만 어느순간이라도 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