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과 쉰 하나가 만나서
아홉 살 때는 비 오는 날이 좋았다. 열아홉이 되었을 때는 비가 오면 뱃일하시는 부모님께서 좀 더 고되다는 것을 알았다.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는 도시를 방황하며 바다를 그리워했고. 지금의 나는 바닷마을이 아닌 인근 소도시에 산다. 얼마 전 비가 장대같이 쏟아부을 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운전을 하던 중 내가 많은 개구리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아홉 살의 내가 비가 오면 오빠와 노란 장화를 신고 마당을 뛰어놀았던 것처럼 신이 난 개구리의 걸음이 죽음의 순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색한 표준말을 구사하는 나를 보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어디서 온 게 중요한가요, 우리가 같이 삼천포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 궁금하지 않나요?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삼천포라는 소도시에서 로프를 가지고 일을 하며 살아간다. 마크라메를 활용해서 조개껍질을 매달아 가랜드 혹은 발을 만든다. 가리비 껍데기는 비룡수산에서 제공받고 있으며, 비룡수산은 가업이다. 이제는 오빠가 사장님 역할을 톡톡히 해 나가며 사업을 이끌고 있다. 나는 구구라고 애칭 하는 남자친구와 낮고 낡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서른두 살이 되어도, 쉰 하나가 되어도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났다가 아닌 운명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세상이 아직 많이 두렵다는 것이며, 말랑말랑한 멘탈은 언제나 틀 없이 활동한다는 것. 서로에 대한 나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그럼에도 존중하려 애쓰는 지점에서 우리는 노력 중인 커플이다.
구구도 재주가 많아서 이것저것 만든다. 얼마 전에는 삼천포초등학교 앞 문방구가 폐업정리를 해서 같이 구경을 나섰다. 나는 지끈이 로프인 줄 알고 대량 구매했는데, 구구는 버려진 나무와 지끈으로 근사한 등을 만들었다. 나는 면로프를 이용해 마크라메를 어떻게 조개껍질과 어울리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다. 그래서 하루에 한 작품도 못 만드는 날이 많다. 왜냐하면 고민을 하다 보면 한숨이 나오고 무기력해져서 잠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구구구는 내버려 둔다.
“잠이 오면 자요.”
편안하게 잠을 권한다.
내가 무기력하게 가라앉는 틈에서 자책하며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나와 달리, 구구는 나를 컨트롤하는 재주도 있다.
우리는 취미로 당구를 즐긴다. 사구를 치거나 쓰리쿠션을 치던가 하는 데 나의 점수는 엉망이다. 자신의 수지에 맞게 점수를 올려놓고 시작하는 당구. 나는 5개, 구구는 20개. 짧으면 20분, 길면 45분이 소요된다. 당구가 잘 맞는 날에는 고민하지 않다가도, 공이 짜기라도 한 듯 엇갈리기만 하는 날에는 풀이 죽는다. 그리고 매번 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구구에게 물었다.
“왜 잘 될 때는 잘 되는지도 모르겠고요. 안될 때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나는 정말 분한 마음과 열정과 달리 늘지 않는 나를 탓하며 물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아, 오늘은 잘 되는 날인가 보구나. 아,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구나. 딱 거기까지만 생각해요.”
구구가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쌓아온 그의 역사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