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친구들이 “노예 같다”라고 할 정도로 방송작가 일을 좋아했다. 무언가 몰두하는 내 모습이 낯설지만 싫진 않았다. 일을 하면서 없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게 마치 내가 존재해야 될 이유 같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필사적이었다. 소용돌이치고 있는 파도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그 파도에 휩쓸려 자신을 잃을 걸 알면서도 그 속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일을 시작하면 무엇이든 뒷전이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고 설거지, 청소 같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연락도 못 했고 일을 하다가 화가 나면 참지 않았다. 내가 제일 힘들다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게 생각됐다.
한 번은 남자 친구가 집 앞에 약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당시 나는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서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린 상황이었다. 집 안에 들어오란 말도 못 하고 그냥 약만 받고 돌려보냈다. 자막을 쓰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불을 켤 생각도 못한 채 어두컴컴한 방에서 자막을 치는 중이었고 남자 친구는 서운해하며 돌아섰다. 당시 나는 고맙다, 미안하다고 얘기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오지 말랬잖아.”라고 말하는 못된 여자였다.
친정엄마는 나에게 일을 계속했다면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얘기했다. 이젠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작가 일을 다시 한다면 딸 때문일 것이다. 딸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진 않다. 언젠가 “엄마도 예전에는 방송작가였어”라고 왕년의 전성시대를 자랑하듯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말 한마디로 지난 9년의 노력을 끝내고 싶진 않다.
그래서 끈을 놓지 않고 지금도 구인 구직란을 자주 본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좋건 싫건 9년이나 했던 일이기에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공백 따윈 없었던 것처럼 일도 잘하고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싶다. 누구나 알만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성취감도 얻고 돈도 벌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피, 땀, 눈물을 갈아 넣어야 된다는 걸 안다.
어릴 때, 우리 엄마께서는 나로 인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던 자신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었다. 본인이 얼마나 젊었는지 하고 싶은 꿈이 많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를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마음이 들었고 꿈을 대신 이뤄줘야 된다는 부채의식도 있었다. 엄마가 바란 내 모습은 올해의 작가로 뽑혀서 엄마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딸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꿈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내 생각만 할 수 없었다. 방송작가는 글만 쓴다고 되는 직업이 아니었고 사교성과 꼼꼼함, 성실함, 센스가 필요했다. 오히려 글 쓸 일이 거의 없는 직업이었다. 선배들의 끼니를 챙기며 식사를 포장해올 때,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들을 때 “넌 내 앞에 있었으면 맞았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를 위한 다른 자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순 없어도 사람답게 사는 딸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내 생각만 할 수 없다. 일을 해서 남편의 부담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엄마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싶다. 무엇보다 딸이 자라서 본인 때문에 많은 걸 포기했다는 죄책감에 영향받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더 노력해야 된다.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위해, 나는 다시 일의 노예가 되고 싶다. 기꺼이.